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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평촌리·예현리 유적(大邱 坪村里·禮峴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평촌리·예현리 유적(大邱 坪村里·禮峴里遺蹟) | 이칭별칭=대구 평촌리·예현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412-3·예현리 5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돌널무덤]], [[독무덤]], [[펴묻기]], [[굽혀묻기]],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슴베 없는 간 돌살촉]], [[골아가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석범 }} ==설명==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412-3·예현리 55 일원에 위치한다. 달성 2차 지방 산업 단지 지원 도로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2007~2008년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달성군의 남쪽 끝에 위치하며 국도 5호선 서편에 인접하여 평촌리 유적, 고속 국도 45호선 동편에 예현리 유적이 있다. 서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이 있고 그 너머로 넓은 충적 평야가 낙동강 동안을 따라 형성되며, 동쪽으로는 차천(車川)이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차천변의 해발 36~39m의 충적지에 평촌리 유적이 위치하며 남서쪽 550m 떨어져 예현리 유적이 있다. 조사 결과, 평촌리 구간(1차 조사)에서 [[집자리|집자리]] 2기, [[구덩이|구덩이]] 14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8기, [[덮개돌|덮개돌(上石)]] 2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3기, [[돌무지|돌무지(集石)]] 1기, 예현리 구간(2차 조사)에서 돌널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그 밖에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조선시대|조선 시대]] 생활 유적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2호)과 세장방형(1호)이 있다. 1호는 길이 14.8m, 너비 4.82m, 깊이 0.32m이고, 중앙에 3개의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벽도랑|벽 도랑(壁溝)]]은 남쪽의 짧은 벽을 제외한 세 벽에서 ‘ᄃ’자 모양으로 확인되고,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사이 또는 벽 도랑 사이에 위치한다. 2호는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고, 서쪽 짧은 벽에 치우쳐 화덕 자리를 두었다. 구덩이의 평면 형태는 원형(2~4·10~12호) 6기, 타원형(13호), 장방형(5~7·9호), 말각 장방형(14호) 등이 있다. 구덩이는 형태, 내부토 퇴적 양상, 배치 등에서 2~4호, 5~7호, 10~12호로 나누어진다. 10~12호의 경우, 구덩이를 판 후 굴착면을 따라 [[냇돌|냇돌(川石)]]과 [[깬돌|깬돌(割石)]]을 돌려 놓은 형태로 솟대나 [[장송의례|장송 의례(葬送儀禮)]]에 사용된 깃대를 세운 시설로 판단된다. 평촌리의 돌널무덤은 28기가 동-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조성되었으며, 서쪽으로 인접하여 [[대구평촌리고인돌군|평촌리 고인돌군 I~Ⅲ]], [[대구고봉리고인돌군|고봉리 고인돌군]]이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5~7m 간격을 두고 4열로 배치되고, 일부는 드문드문 분포한다. 4열 중 가운데 2열은 돌널이 크고 부장품에서 우위를 보인다. 1~3기가 군집을 이루어 3m 내외의 간격으로 [[묘역|묘역]]을 기획하여 축조한 친연 관계(親緣關係)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축조 방법은 [[판돌|판돌]]을 세운 [[상자모양|상자 모양(箱形)]] 8기, 판돌을 세우고 냇돌을 눕혀 쌓은 [[혼축형|혼축형(混築形)]] 8기, 판 돌 또는 냇돌만 눕혀 쌓은 [[석축형|석축형(石築形)]] 7기로 구분된다. 바닥은 대부분 판돌을 깔았다. 돌널은 상자 모양으로 길이 0.72~1.45m, 너비 0.19~0.4m, 깊이 0.15~0.4m, 혼축형 길이 0.9~1.8m, 너비 0.35~0.58m, 깊이 0.20~0.46m, 석축형이 길이 1.32~2.32m, 너비 0.48~0.7m, 깊이 0.35~0.57m이다. 석축형이 크기가 크고 [[껴묻거리|껴묻거리]]가 많은 점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18기에서 사람 뼈가 출토되었는데, 머리 방향은 동쪽과 북쪽이 주를 이룬다. 매장 방법은 [[신전장|펴묻기(伸展葬)]]와 [[굴장|굽혀묻기(屈肢葬)]]가 확인되었다. 사람 뼈를 분석한 결과, 모두 남성이며 3·20호는 30~34세, 1·7·25호는 12~19세로 확인되었다. 26호를 파괴하고 조성된 14호는 고인돌의 하부 구조일 가능성이 있으며, 18·25호는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 단계]]의 6호와 24호 구덩이를 파괴하여 [[덧띠토기문화|덧띠 토기 문화]]가 유입된 이후에도 돌널무덤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예현리의 돌널무덤은 3기 모두 판돌을 사용한 혼축형으로 후대 유구에 의한 파괴가 심하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마디자루간돌검|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버들잎모양간돌살촉|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有葉式磨製石鏃)]],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칼|돌칼]] 등이며 대부분 돌널무덤에서 [[간돌검|간 돌검]]과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조합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독을 묻는 방법에 따라 수직으로 묻은 [[직치|직치(直置)]], 비스듬하게 묻은 [[사치|사치(斜置)]], 수평으로 묻은 [[횡치|횡치(橫置)]]로 나뉜다. 평촌리 독무덤은 돌뚜껑을 덮은 직치 1기, 돌뚜껑을 덮은 사치, 횡치로 모두 [[단옹식|단옹식(單甕式)]]이며, 돌널무덤군 내에 6~8m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사용한 독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손잡이달린바리토기|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이며, 항아리 모양 토기는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집자리의 조성 시기는 세장방형의 평면에 홈 자루 간 돌검과 슴베 없는 간 돌살촉이 함께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단계|송국리 문화 단계]]보다는 이르다. 무덤은 돌널의 형태, 무덤 간 또는 초기 철기 시대 구덩이와의 중복 관계, 의기화된 간 돌검과 세장한 간 돌살촉 등을 통해 볼 때, 청동기 시대의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평촌리·예현리 유적은 달성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4&d_idx=130 인골이 완전하게 발견된 청동기시대 무덤]", <i>2008 한국고고학저널</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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