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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노성리 유적(鎭安 魯城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진안 노성리 유적 | 키워드=[[고인돌]], [[돌널무덤]], [[송국리 문화]], [[송국리식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승옥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1089-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1089-1 일원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1996년과 1998년 2차에 걸쳐 국립전주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기, [[고인돌|고인돌]] 8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300m 내외의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며 지장산에서 발원하여 금강 본류로 흘러드는 하천과 면하여 형성되어 있다. 집자리는 평면 원형으로 지름 3.65~3.94m이다. 중앙부는 유실이 심해 타원형 구덩이를 발견할 수 없었으나 발견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석도|돌칼(石刀)]] 편, [[간돌검|간 돌검 편]]이나 평면 형태로 보아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판단된다. 고인돌은 방형계의 묘역(墓域)을 갖춘 단독 무덤(單獨墓)과 연접 무덤(連接墓)으로 구별된다. 단독 무덤인 1·2호는 해발이 낮은 서쪽에, 연접 무덤인 3·4호는 동쪽에 조성되어 두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1호는 무덤방(墓室)에서 [[피홈있는간돌검|피 홈(血溝)이 있는 간 돌검]]과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이 발견되어 유적 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호와 같은 단독 무덤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고 결과적으로 고인돌은 해발이 낮은 곳에서 높은 쪽으로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 3·4호는 각각 3기의 고인돌이 연접하여 축조되어 있는데 경계석(境界石)의 공유관계로 볼 때 3호는 북→남으로 만들어졌고 4호는 남→북의 순서로 축조되었다. 4호는 하나의 방향을 따라 순차적으로 배치되는 다른 연접 무덤들과 차이를 보인다. 즉 4-1호와 4-2호는 무덤방의 방향이 서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고, 4-3호는 남북으로 연접되지 않고 동쪽에 연접되는 이질적인 배치를 보인다. 1·2호 돌널무덤은 3호 고인돌의 동서쪽에 병렬로 배치되어 있고, 3호 돌널무덤은 4호 고인돌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들 돌널무덤은 모두 지하식으로 1·2호는 일단 구덩이(土壙), 3호는 이단 구덩이로 축조되었다. 1호의 바닥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깔았으며 2호는 짧은 벽 쪽에만 판돌(板石)을 깔았고 3호는 아무 시설 없이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돌널무덤에서는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1·2호 고인돌은 단독 무덤으로서 다른 고인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접 무덤과 집자리에서는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돌널무덤도 같은 시기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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