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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탑동·두곡동 유적(烏山 塔洞·斗谷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탑동·두곡동 유적(烏山 塔洞·斗谷洞遺蹟) | 이칭별칭=오산 탑동·두곡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오산시 탑동 산2-1·산3·산4·산6과 두곡동 산2-2·산3·산17-1·산62-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삼각 덧띠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반송리식 집자리]], [[바리 토기]], [[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설명== 경기도 오산시 탑동 산2-1·산3·산4·산6과 두곡동 산2-2·산3·산17-1·산62-4 일원에 위치한다. 2009~2011년 오산 세교 택지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유적은 11~16지점에 해당하며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집자리]]와 무덤을 비롯하여 초기 철기 시대 [[독무덤|독무덤(甕棺墓)]], 삼국 시대의 집자리, [[구덩이|구덩이]], [[움무덤|움무덤]], 독무덤, [[목탄가마|목탄 가마]], 통일 신라 시대의 집자리,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고려~조선 시대의 집자리, 구덩이, 도랑(溝), 움무덤, [[회곽묘|회곽묘(灰槨墓)]], [[기왓가마|기왓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오산시 서쪽의 노적봉에서 오산천 방향으로, 남동향으로 뻗어 내린 낮은 구릉성 산지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대체로 구릉의 사면과 말단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 유구는 13지점(탑동)의 구릉(해발 52.6m)과 14지점(두곡동)의 구릉(해발 30~50m)에 입지한다. 14지점의 동쪽으로 약 700m 거리에 오산천이 있다. 13지점과 14지점은 2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13지점에서 집자리 3기와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14지점에서 집자리 7기와 구덩이 2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 1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기 등이 발굴되었다. 한편 12지점에는 [[삼각덧띠토기|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가 이용된 독무덤 1기가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구분된다. 세장방형 집자리인 14지점 1호의 규모는 길이 12.96m, 너비 3.3m, 최대 깊이 0.36m이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벽 도랑(璧溝)이 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장축선 중앙부를 따라 4기가 배치되어 있다. 원형 평면으로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式爐址)이다. 저장 구덩이는 집자리의 긴 벽 쪽과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자리 안에서는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가 있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1점과 토제 [[그물추|그물추]] 9점이 함께 나왔다. 방형, 타원형, 원형 집자리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며, 이 가운데 14지점 2호 집자리는 [[반송리식집자리|반송리식 집자리]]로 분류된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무늬가 있는 깊은 바리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간돌검|간 돌검(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돌칼]] 미완성품, [[숫돌|숫돌(砥石)]], 그물추 등이 나왔다. 무덤은 13지점에 돌널무덤 1기만 단독으로 있으며, 14지점에는 [[고인돌|고인돌]]을 비롯하여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 등 4기가 확인되었다. 13지점의 돌널무덤은 길이 0.5m, 너비 0.3m, 잔존 깊이 0.2m로 소형이며, 내부에는 목탄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 점에서 볼 때, [[화장묘|화장묘(火葬墓)]]일 가능성이 있다. 돌널무덤 안에서는 항아리 모양의 붉은 간 토기, 바리 모양 붉은 간 토기, [[기둥모양돌자귀|기둥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등이 나왔다. 14지점의 고인돌은 덮개식으로 추정되며, [[껴묻거리|껴묻거리]]로는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항아리 모양 붉은 간 토기가 있다. 내부 토양에는 목탄과 사람 뼈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규모가 소형인 돌뚜껑움무덤은 내부에서 사람 뼈 편과 목탄이 섞여 나왔으며 화장묘로 추정된다. 돌뚜껑움무덤과 돌널무덤에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유적의 연대는 세장방형 집자리가 기원전 10~9세기로, 넓은 개념의 송국리식 집자리와 관련된 장방형, 방형, 타원형, 원형 집자리는 기원전 8~6세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등 무덤들도 기원전 8~6세기로 판단된다. 탑동·두곡동 유적은 생활 공간인 거주 영역과 사후 공간인 무덤 영역이 분리된 마을의 구조를 나타내는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경기 지역의 송국리 문화의 분포와 전개 양상을 규명하는 데에 양호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지역에서 발굴 사례가 많지 않은 삼각 덧띠 토기 독무덤의 존재도 주목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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