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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축산리 유적(群山 鷲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축산리 유적(群山 鷲山里遺蹟) | 이칭별칭=군산 축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1-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돌널무덤]], [[독무덤]], [[통자루 간 돌검]], [[돌살촉]], [[민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규정 }} ==설명==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1-3 일원에 위치하며, 금강 Ⅱ지구 옥구 2-1공구 용수로공사에 앞서 2005~2006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망해산발 228.6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능선 끝자락인 해발 27m 내외의 구릉 능선상에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유구로는 [[집자리|집자리]] 2기,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27기, [[옹관묘|독무덤(甕棺墓)]]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조사지역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남동-북서 방향의 도랑을 경계로 조사지역 동쪽에 1기, 서쪽에 1기가 위치한다. 동쪽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다. 대부분 파괴되어 절반 정도 남아 있으며, 규모는 지름 4.14m, 깊이 0.12m이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돌살촉|돌살촉(石鏃)]]이 출토되었다. 서쪽 집자리는 원형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만 설치된 송국리식이다. 규모는 지름 3m, 깊이 0.3m이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 편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집자리의 서쪽에 집중 분포하고, 돌널무덤 27기와 독무덤 4기가 혼재되어 있다. 돌널무덤은 대체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분포하는데, 몇 기를 제외하고 장축은 모두 동-서 방향에 가깝다. 무덤 구덩이는 생토층인 적갈색 풍화 암반층을 1단이나 2단으로 판 후 양쪽 긴 벽은 여러 매의 판돌(板石)을 세우고 양쪽 짧은 벽은 1매의 판돌을 세웠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1단이나 2단으로 덮고 뚜껑돌 사이 빈 공간은 작은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틈새를 막았다. 11·19·22·23·27호 돌널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판 후 [[석관|돌널(石棺)]]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2중으로 뚜껑을 덮었다. 7·12·13·19·27호 돌널무덤은 바닥면 한쪽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팠는데 구덩이의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2호 돌널무덤의 경우 돌널을 만들고 뚜껑은 덮은 후 가장자리는 깬돌로 보강하였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0.86~2.37m, 너비 0.35~1.62m, 깊이 0.7~0.35m이며 돌널은 길이 0.54~1.28m, 너비 0.16~0.38m, 높이 0.25~0.3m이다. [[껴묻거리|껴묻거리(副葬品)]]는 7·26·27호 돌널무덤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有柄式磨製石劍)]], 10호 돌널무덤에서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7호와 26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간 돌검은 서쪽 긴 벽에 기대어 칼끝이 위를 향하게 세워진 채로 출토되었다. 이에 반해 27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간돌검|간 돌검]]은 남쪽 짧은 벽에 치우쳐 바닥면에 판 구덩이에서 출토되었는데 칼끝이 위를 향하도록 세워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10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간 돌살촉은 바닥 중앙에서 출토되었으며 [[화살촉|화살촉]] 끝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4기가 조사되었다. 독무덤은 생토층인 적갈색 풍화 암반층을 ‘U’자 모양으로 무덤 구덩이를 판 후 몸통이 긴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를 [[직치|세워서(直置)]]안치한 다음 그 위에 판돌을 덮었다. 1호는 상부가 유실되어 뚜껑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2호는 몸통이 긴 독 모양 토기를 세워서 주검을 넣고 그 위에 판돌 1매로 덮었다. 3·4호 독무덤은 나란하게 축조되었으며, 3호 독무덤은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를 서쪽이 더 넓게 파고 독 모양 토기를 세워서 안치한 다음 그 위에 판돌 2매로 덮었다. 4호 독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독널보다 약간 넓게 판 후 독 모양 토기를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세우고 그 위에 판돌 3매로 덮었다. 독무덤에서는 껴묻거리가 전혀 출토되지 않았으며, 독널로 사용된 토기는 모두 동이 모양에 아가리가 약간 바라진 독 모양 토기를 사용하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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