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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내평리 고인돌[春川 內坪里支石墓]}} {{유적정보 | 이칭별칭=춘천 내평리 고인돌, 춘천 내평리 지석묘 | 키워드=[[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간 돌살촉]], [[돌살촉]]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노혁진 | 성격=고인돌 | 크기=총 4기 | 소재지=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 일원에 위치한다. 1971년 소양댐 수몰 지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고인돌|고인돌]] 3기가 확인되었고, 현재는 소양댐에 수몰되었다. 내평1리의 고인돌 2기는 서로 4m 거리를 두고 있다. 동쪽 1기는 [[덮개돌|덮개돌(上石)]] 위에 받침돌(支石)용 판돌(板石) 1매가 얹혀진 상태이며, 서쪽의 1기는 뚜껑돌의 상반부만 노출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동쪽의 1기는 길이 3.3m, 너비 2.6m, 두께 0.4m이며 그 위에 놓인 추정 받침돌용 괴석(塊石)은 가장 긴 길이가 1m에 이른다. 서쪽의 1기는 덮개돌이 길이 2.5m, 너비 1.6m, 두께 0.5~0.6m로 덮개돌 하부를 조사하자 그 밑에서 [[받침돌|받침돌]]로 보이는 절단된 판돌이 노출되었는데 절단 전의 원형은 크기가 길이 2.2m, 너비 1.1m에 이른다.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와서 내부를 파괴하고 그 안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9점을 꺼내갔다고 한다. 내평2리 고인돌은 내평1리 고인돌로부터 1.5㎞ 정도 떨어져 있다. 조사 당시, 덮개돌은 민가 마당에 놓여 있었고, 받침돌로 보이는 판돌 3매가 덮개돌로부터 동북쪽으로 5m정도 이동되어 장독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덮개돌은 길이 2.6m, 너비 2m, 두께 0.3~0.35m이다. 3매의 받침돌은 모두 장방형으로 크기도 비슷한데 길이 1.2~1.3m, 너비 0.7~0.9m, 두께 0.2m 내외이다.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한국 전쟁 직후에 현재의 덮개돌 하부 위치에서 [[돌살촉|돌살촉]] 6점을 수습했다고 한다. 내평리 고인돌은 북한강 상류 역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형식인 소형 [[탁자식고인돌|탁자식(卓子式) 고인돌]]에 해당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71년~1971년 || 팔당 소양댐 수몰지구유적 발굴종합조사보고 || 1974 || 문화재관리국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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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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