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2604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2604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제월리 유적(潭陽 齊月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제월리 유적(潭陽 齊月里遺蹟) | 이칭별칭=담양 제월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산63 일대 | 성격=무덤유적 | 키워드=[[돌살촉]], [[돌검]], [[돌도끼]], [[홈자귀]], [[돌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산63 일대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59년 마을 주민인 이원복과 양회채가 산사태가 난 곳에서 청동기 시대 [[돌살촉|돌살촉]]과 [[돌검|돌검(石劍)]] 등을 발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이 일대를 조사하여 삼국 시대 고분 4기와 고려 시대 무덤 2기를 추가로 확인하였다. 제월리 유적은 영산강의 지류인 오례강(五禮江) 동안에 형성된 얕은 산자락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영산강과 오례강 주변의 평야가 한눈에 조망된다. 청동기 시대 유물들은 모두 석기인데, [[집자리|집자리]]에서 수습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1959년 당시에는 67점으로 보고하였고, 1973년에 최몽룡은 68점으로 보고해서 유물 총수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차이가 커서 양자를 정확하게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현재 전남대학교박물관에는 다수의 [[돌살촉|돌살촉]], [[돌검|돌검]], [[돌도끼|돌도끼]], [[홈자귀|홈자귀(有溝石錛)]], [[돌끌|돌끌(石鑿)]],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숫돌|숫돌(砥石)]]과 함께 상당량의 석재들이 남아 있다. 돌살촉은 대부분 [[슴베식돌살촉|슴베식(有莖式)]]이지만 슴베가 없는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도 있다. 제월리 유적은 해방 이후 호남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문화상을 알려주는 첫 사례이며, 1960년부터 재개된 호남지역 고고학 조사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2604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