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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장재리 안강골 유적(牙山 長在里안강골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장재리 안강골 유적(牙山 長在里안강골遺蹟) | 이칭별칭=아산 장재리 안강골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134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역삼동 유형]], [[흔암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나건주 }} ==설명==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1345 일원에 위치한다. 배방 택지 개발(1단계) 사업과 장항선(천안-온양 온천 간) 복선 전철 노반 개량 공사에 앞서 2005~2006년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서쪽 배후의 해발 116m의 구릉성 산지에서 동남 방향으로 갈라져 나온 해발 55m 정도의 구릉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25m 거리에 장재천이 위치하며, 남쪽으로 1.1㎞ 거리에서 천안천에 합수한다. 곡간을 사이에 둔 두 개의 구릉에서 14기의 [[집자리|집자리]]가 조사되었다. 형태는 내부에 평지식 또는 구덩식 화덕이 설치된 장방형 집자리로, 구릉의 능선을 따라 줄을 지어 분포한다. 14기 중에서 3호가 길이 19.36m, 너비 4.2m, 깊이 1.04m로 가장 큰 규모이며, 4호와 Ⅱ-1호 또한 길이가 각각 18.40m, 19.22m로 다른 집자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12호는 유실로 인해 완전하지 않지만 길이가 11.7m 정도 남아있는데 그 형태로 보아 대형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 10기의 집자리는 길이 5.82~10.42m 정도이다. 대형 집자리 4기는 74~90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대형에서 4~6기, 중·소형에서 1~2기가 확인된다. 대형 집자리에서는 긴 벽에 치우쳐 여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가 열을 지어 시설되어 있으며 중·소형 집자리는 짧은 벽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4기의 대형 집자리 주변에는 2~3기의 중·소형 집자리가 군집을 이루며 분포한다. 집자리군은 4개로 구분되는데 구릉 능선에 형성된 정상부 평탄면에 위치한다. 구릉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4호와 12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자리군은 15m 정도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두고 분포하며, 구릉 앞부분에 치우쳐 위치하는 3호와 Ⅱ-1호 중심의 주거군은 90m, 7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집자리에서는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토기]],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 등과 함께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 구멍무늬, 골아가리가 새겨진 다양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간돌검|간돌검]] 편, [[슴베없는돌살촉|슴베 없는 돌살촉]],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배모양돌칼|배 모양 돌칼]], [[양날돌도끼|양날 돌도끼]], [[숫돌|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멍무늬의 빈도가 낮고 겹아가리와 짧은 빗금무늬가 결합된 토기의 양이 많으며, 겹아가리의 경우 너비가 좁은 형태와 넓은 형태 모두 확인된다. 겹아가리, 빗금무늬, 구멍무늬가 결합된 형태도 확인된다. 토기 아가리 일대에 무늬가 새겨지고 겹아가리 형태로 제작된 것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보아 천안-아산 일대에 분포하는 [[역삼동유형|역삼동]]·[[흔암리|흔암리 유형]] 취락 유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취락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8기의 목탄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하였다. 2호는 3120±40 BP, 3110±40 BP로 가장 이른 연대로 확인된다. 3·8·10호에서 각각 2980±80 BP, 2950±60 BP, 2910±70 BP 등의 결과를 얻었다. 1호에서는 2850±50 BP와 2740±50 BP로 확인되어 가장 늦은 연대에 해당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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