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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남전리 고인돌군[密陽 南田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밀양 남전리 고인돌군,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 키워드=[[간 돌검]],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덮개식 고인돌]], [[껴묻기 공간]]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조성 시기=기원전 5세기 | 성격=고인돌 | 크기=총 30기 |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 1035-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기념물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 1035-1 일원에 위치한다. 1974년 남전리 241-1, 1979년 남전리 762 일대에서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 발견되어 동아대학교 심봉근 교수가 현지를 답사하여 유구를 실측하고 유물의 출토경위를 조사하였다. [[고인돌|고인돌]]은 해발 600m의 덕대산(德大山) 기슭의 남쪽 사면에 7~10기씩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윗면에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있는 것이 있으며,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보담마을 앞 길가의 6기 중 덮개돌의 크기가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2m, 너비 0.6m, 두께 1m, 가장 큰 것은 길이 2.6m, 너비 1.8m, 두께 1.1m이다. 조사된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돌널형(石棺形)으로 긴 벽은 [[판돌|판돌(板石)]] 2~3매를 가로로 설치하고, 짧은 벽은 양 긴 벽 사이에 1매의 판돌을 끼웠다. 바닥에도 판돌을 깔았으며, [[뚜껑돌|뚜껑돌(蓋石)]]은 4매의 판돌을 이용하였다. 여기에 다시 벽을 돌아가면서 대형의 [[깬돌|깬돌(割石)]]을 2~3단 쌓았다. 또 동쪽 벽에 연접해서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껴묻기공간|껴묻기 공간(副葬空間)]]을 따로 마련했다. 조사 당시 이미 덮개돌이 급류에 휩쓸려 유구의 내부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주민의 말에 의하면 덮개돌 위에는 자갈과 흙이 쌓여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받침돌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으로 추정되며, 껴묻기 공간을 별도로 만든 특이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간 돌검은 동쪽의 짧은 벽 쪽에서 출토되었고, 간 돌살촉은 중앙부에서 남쪽 벽으로 치우쳐 있었다. 붉은 간 토기는 별도로 만든 껴묻기 공간에 놓여 있었다. 1974년에 신고된 유물은 경부가 직립한 항아리 모양(壺形)의 붉은 간 토기와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이다. ==지정정보== {|class="listtable"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국가유산 || 경상남도 기념물 ||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密陽 南田里 支石墓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0480000 🔗]</span>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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