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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월산리 신흥동 유적(咸平 月山里新興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월산리 신흥동 유적(咸平 月山里新興洞遺蹟) | 이칭별칭=함평 월산리 신흥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월산리 1252-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돌덧널무덤]],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널무덤]], [[검은 간 긴 목 항아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천선행 }} ==설명==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월산리 1252-1 일원에 위치한다. 함평 노인요양시설 및 장애인 희망타운 조성, 함평 무지개마을 조성의 일환으로 3차(2008·2010·2011~2012년)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영산강 중류 지역에 해당하는 지류인 함평천 동안의 구릉 능선과 사면부에 입지하는데, 함평천을 따라 동쪽과 서쪽에 나지막한 구릉과 하천 충적지가 발달해있다. 유적은 3개 지점으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나, 각 지점이 모두 연접하고, 유구들이 연속적으로 확인되므로 동일 유적이다. 3개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석관묘|돌널무덤(石棺墓)]], [[구덩이|구덩이]], [[도랑|도랑(溝)]]을 비롯하여 초기 철기 시대 [[목관묘|널무덤(木棺墓)]]과 도랑, 삼국 시대 [[고분|고분(古墳)]], 독무덤(甕棺墓), [[토광묘|움무덤(土壙墓),]] 구덩이, 조선 시대 [[아궁이|아궁이]], [[가마|가마(窯)]], 구덩이, 도랑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구 는 유적 전체에 걸쳐 해발 20~35m 구릉 사면부에 분포한다. (세)장방형 집자리와 돌널무덤은 남서사면에 분포하고 원형 집자리는 동북사면에 분포하는 차이가 있다. 집자리 33기, 돌널무덤 10기, [[석곽묘|돌덧널무덤(石槨墓)]] 2기, 구덩이 1기, 도랑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 33기는 크게 (세)장방형 평면에 복수의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설치된 이른 시기 집자리와 방형 또는 원형의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 집자리로 나뉜다. (세)장방형 집자리(8기)는 일반적인 이른 시기 집자리와 달리 장축 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점이 특징이다. 집자리 규모는 길이 5.56~13.28m, 너비 2.76~5.68m로 편차가 있다. 화덕 자리는 대체로 2기 이상이고,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 [[무시설식화덕자리|무시설식]],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등 다양하다. 특히 돌 두름식 화덕 자리는 바닥에 판돌을 깐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도 있는데, [[원촌유적|순창 원촌 유적]], [[태목리유적|담양 태목리 유적]]과 유사하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일반적으로 정형성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2차-8호 집자리는 중앙에 2열로 설치되어 호서 지역 가락동 유형의 둔산식 집자리와 대비된다. [[벽구|벽 도랑(壁溝)]]도 2차-8호에서만 확인되고, 배출구가 없고 도랑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 구멍이 확인되므로 벽 도랑 시설은 벽을 축조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원형 및 방형 집자리는 다시 2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방형 집자리(6기) 내부에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것이고, 하나는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것(18기)이다. 전자는 세장방형 집자리에 비해 소형화되고, 후자는 1기(1차-1호)를 제외하고 원형 집자리이다. 3차-11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외부에 4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되었지만, 나머지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이 설치된 전형적인 송국리식이다. 규모는 지름 2.98~5.84m이고, 벽을 따라서 도랑이 설치된 2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겹아가리짧은빗금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 등이 출토되고, 석기로는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磨製石鏃)]],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돌끌(石鑿)]],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있는 방형 집자리에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돌도끼, 숫돌,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 및 원형의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세)장방형 집자리는 2910±20 BP, 2925±20 BP, 2945±20 BP, 286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19~1016년)로 집자리 형태와 구조, 출토 유물과 함께 검토하면 대체로 기원전 12~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원전 9세기에 집자리가 방형으로 바뀌며 소형화되고, 기원전 8~7세기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로 전환된 것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은 1구역에서 10기, 2구역에서 2기가 확인되었는데 1구역 1~5호, 6~9호, 10호가 각각 밀집하여 군집한다. 돌널무덤은 대체로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고, 1구역 1호와 2호가 세장방형 집자리 및 방형 집자리를 파괴하고 설치되어 이보다 늦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무덤이라고 하나, 수 매의 판돌으로 조합한 것을 비롯하여 판돌과 깬돌(割石)을 혼합하거 나 깬돌만으로 무덤을 만든 것도 있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이 없거나 잔 깬돌을 바닥에 깐 것 등이 있다. 내부에서 [[턱슴베간돌살촉|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을 비롯하여,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된다. 집자리와 돌널무덤의 중복 관계,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식 집자리 시기와 동일한 기원전 8~7세기로 판단된다. 그밖에 구덩이 1기와 도랑 1기가 확인되었는데, 내부에서 모두 민무늬 토기 편만 출토되었다. 한편, 초기 철기 시대 널무덤 1기와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모두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의 남동편 사면에 각각 독립적으로 분포한다. 널무덤 규모는 길이 2.59m, 너비 1.49m, 깊이 0.39m이다. 내부에서 널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널의 판재 너비는 6~8㎝이고, 널의 규모는 길이 1.9m, 너비 0.69m, ‘ㅍ’자 모양으로 판재가 결구되어 있다. 널의 남벽 밖 무덤 구덩이 사이에서 [[검은간긴목항아리|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가 1점 출토되었고, 도랑에서는 뚜껑과 [[굽다리|굽다리(臺脚)]] 편이 출토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은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월산리 신흥동 유적에서는 돌무지 없이 판재형의 널무덤이 확인되어, 향후 초기 철기 시대 무덤 구조를 검토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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