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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월기리 유적(舒川 月岐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월기리 유적(舒川 月岐里遺蹟) | 이칭별칭=서천 월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월기리 40-8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환호]],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손준호 }} ==설명==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월기리 40-8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은 구릉 정상부와 남서·북동쪽 사면부에 자리하는데, 정상부는 해발 55m 내외로 평탄한 반면 사면부는 비교적 경사가 급한 편이다. 발굴 조사는 2003년 10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진행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집자리|집자리]] 14기와 이를 둘러싼 [[환호|환호]]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되는데, 전자가 구릉 사면부에 위치한 반면 후자는 정상부와 능선부에 자리한다. 내부 시설로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가 8기 확인되었다. 환호는 구릉 정상부를 둘러싸는 형태로 남서쪽과 북동쪽 사면부에 축조되어 있다. 환호를 굴착하지 않음으로써 남서쪽에 2개, 북동쪽에 1개의 출입구를 만들었는데, 지형상 골을 이룬 북동쪽 사면부에도 환호가 단절되어 있다. 조사 범위 밖으로 유구가 확장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와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유물은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 [[덧띠토기|덧띠 토기]],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 손잡이,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 [[통슴베간돌살촉|통슴베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형태를 볼 때 늦은 시기의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에 해당하며, 일부 유물을 통해 덧띠 토기 문화와의 공존 및 교류 가능성도 짐작할 수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 등을 참고하면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늦은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구의 중복 축조 사례가 거의 없고 출토 유물상의 차이도 크지 않아, 유적의 존속 기간은 길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월기리 유적은 비교적 단기간 점유된 송국리 유형의 취락으로서, 호서 지역에서 흔하지 않은 환호가 발견되어 취락 연구에 양호한 자료를 제공한다. 한편,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진 지점에는 9기의 [[고인돌|고인돌]]이 확인된 이사리 유적이 자리하는데, 월기리 유적과 함께 하나의 대형 취락에 포함된 생활 및 무덤 공간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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