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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남성리 40-3 유적(牙山 南城里40-3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아산 남성리 40-3 유적, 아산 남성리 돌널무덤 | 키워드=[[돌무지돌덧널무덤]], [[돌무지널무덤]], [[세형동검]], [[여러 꼭지 거친무늬 거울]], [[이형 청동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재훈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분 |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40-3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40-3에 위치한다. 남성리는 대부분 평야 지대로 중앙부 일대는 저구릉지가 연결되어 있는데 유적은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해발 40m의 낮은 구릉 정상부에서 발견되었다. 1976년 우물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세형동검 문화기 일괄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같은 해 국립박물관에 의해 수습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구의 대부분이 이미 파괴되었지만, 잔존 벽석 및 관련 석재 구조물로 보아 [[돌무지돌덧널무덤|돌무지돌널무덤(積石石槨墳)]] 또는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으로 판단된다. 매장 주체부는 지표면인 암반을 약 2m 가량 경사지게 파내려가 구축하였다. 무덤 구덩이(墓壙) 상·하부는 각각 길이 3.1m, 너비 1.8m, 길이 2.8m, 너비 0.8~0.9m 정도이다. 돌널(石棺)은 두께 10㎝ 정도의 깬돌(割石)을 한 겹으로 쌓아 올려 구축하였는데 가장 잘 남아있는 벽석의 경우 3단으로 약 70㎝ 높이이다. 돌널은 길이 2.35m, 너비 0.5~0.7m, 깊이 1m로 추정된다. 바닥면에는 판돌(板石)과 붉은 점토를 깔았다. 머리 방향은 [[대롱옥|대롱옥(管玉)]]의 출토 위치로 보아 동쪽이다. 따라서 널의 평면은 두광 족협(頭廣足挾) 형태로 판단할 수 있다. 한편 무덤 구덩이 내부는 40㎝ 내외의 돌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장 문화재 발견 신고 및 수습 조사 시 출토된 유물을 추산하면 [[세형동검|세형동검]] 9점과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여러 꼭지 거친무늬 거울(多鈕粗文鏡)]], [[대쪽모양청동기|검파형 청동기(劍把形銅器)]] 3점, [[방패형동기|방패 모양 청동기(防牌形銅器)]] 1점, [[부채모양동도끼|부채 도끼(扇形銅斧)]] 1점, [[대롱옥|대롱옥]] 103점과 [[곱은옥|곱은옥(曲玉)]] 1점,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3점, [[검은긴목항아리|검은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 1점 등 모두 124점에 달하며, 그 외에도 [[칠기|칠기(漆器)]] 조각도 확인되었다. 남성리 40-3 유적은 무덤 구조를 비롯하여 세형동검과 거친무늬 거울의 형식, [[이형청동기|이형 청동기(異形動器)]]와 공구류의 존재, 토기 등의 유물 양상을 종합하여 볼 때 세형동검 문화기 이른 시기 유적으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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