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0418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0418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남산리 유적(會寧 南山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회령 남산리 유적 | 키워드=[[움무덤]], [[사람 뼈]], [[뼈송곳]], [[합장]], [[간 돌살촉]], [[가락바퀴]], [[별도끼]], [[돌도끼]], [[돌칼]], [[돌자귀]], [[찔개살]], [[대롱옥]] | 시대=청동기 | 위치=북한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분 | 크기=총 7기 | 소재지=함경북도 회령시 남산리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1.5㎞ 떨어진 검은개봉의 서남쪽 경사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함경북도 회령시 남산리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1.5㎞ 떨어진 검은개봉의 서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1986~1987년에 [[움무덤|움무덤]] 7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함경북도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움무덤 유적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는데, 남산리에서는 일찍부터 움무덤이 있는 것이 알려졌다. 움무덤은 장방형의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주검(屍身)을 묻은 형식으로 길이 1.8m, 너비 0.5m이다. 4호 무덤은 너비가 다른 무덤보다 0.7m 정도 크며, 깊이는 얕은 편이다. 무덤 구덩이 안쪽으로 벽 가장자리를 따라 크고 작은 돌을 두른 경우도 있다. 1호 무덤에서는 완전한 모습을 갖춘 [[사람뼈|사람 뼈]]가 나왔고 2호 무덤에서는 하반신만 남은 사람 뼈가 나왔다. 1호에서는 [[간돌살촉|간 돌살촉]], [[가락바퀴|가락바퀴]], [[골제송곳|뼈송곳(骨錐)]] 등이 출토되었다. 4호 무덤은 남녀를 함께 묻은 것인데 부부 [[합장|합장묘]]로 보인다. 남자 뼈는 동서 방향에서 약간 기울어져 펴묻기(伸展葬)한 상태로 나왔다. 여자 뼈는 남자의 발밑에 굽혀 묻기(屈身葬)하였으나 후대에 지층 교란에 의해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남자 뼈 주변에서는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1점, [[돌도끼|돌도끼]], [[돌칼|돌칼(石刀)]] 1점, [[돌자귀|돌자귀(石手)]], [[찔개살|찔개살]] 10여 점, 뼈송곳(骨錐) 5점, 뼈 장신구, 그 밖에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석기]]들이 있었다. 여자 뼈 주변에는 조가비 구슬과 청동으로 만든 [[대롱옥|대롱옥(管玉)]]이 있었다. 유물은 [[토기|토기]]가 없고 [[집자리|집자리]]에서 자주 보이는 석기와 뼈연장(骨器)들이 주로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0418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