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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외광리 유적(蔚州 外光里聚落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외광리 유적(蔚州 外光里聚落遺蹟) | 이칭별칭=울주 외광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광리 21-9, 22-3, 42-3, 188-5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 [[민무늬 바리 토기]], [[박편]], [[찰절흔]], [[검단리식 집자리]], [[흔암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외광리 21-9, 22-3, 42-3, 188-5 일원에 위치한다. 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 건설로 2004~2005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취락 유적), 2007~2008년 울산문화재연구원(귀지 유적)이 조사하였다. 취락 유적에서는 [[집자리|집자리]] 37기 및 [[삼국시대|삼국]]·[[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귀지 유적에서는 Ⅰ지구 집자리 7기, Ⅱ지구 집자리 15기, Ⅲ지구 35기, [[구덩이|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완만하고 평탄한 구릉(해발 30~34m)에 입지하며, 두 유적은 600m 떨어져 위치한다. 취락 유적(외광리 21-9)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면적은 대형(45㎡ 이상), 중형(25㎡~45㎡ 미만), 소형(25㎡ 미만)으로 구분된다. 대형 집자리(14·24호)는 세장방형이고, 중형(8·30호)은 장방형으로 구릉의 정선부에 입지한다. 소형은 장방형과 방형으로 구릉 정선부에도 있지만 주로 사면에 분포한다. 집자리 중 20여 기가 중복되었으며, 소형이 중형과 대형을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즉, 세장방형에서 장방형·방형으로 변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화덕자리|화덕 자리]], [[배수구|배수구(排水溝)]] 등이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의 깊이와 기둥 구멍 간의 정형성에 따라 중심 기둥 구멍과 보조 기둥 구멍으로 구분된다. 중심 기둥 구멍은 형태가 원형이며 지름 0.15m 내외, 깊이 0.2~0.55m이고, 보조 기둥 구멍은 지름과 깊이가 0.1~0.15m로 소형이다. 기둥 구멍의 배치에 따라 평지식, 4·6·8주식으로 구분되는데 대형 집자리(14·24호)는 중심 기둥 구멍 없이 보조 기둥 구멍이 다수 확인된다. 중형의 8·30호는 8주식에 보조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장방형은 6주식, 방형은 4주식으로 확인되며 평지식은 바닥에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내부의 가장자리에 돌려져 있는 벽 도랑은 32호를 제외한 모든 집자리에 설치되어 있다. 벽 도랑은 배수와 관련된 시설이지만 내부에 벽을 지탱하는 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되어 복합적 기능의 시설이다. 화덕 자리는 24호만 돌 두름식(圍石式)이고 나머지는 원형의 구덩식(竪穴式)과 평지식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8 ·14·16·24호 세장방형, 장방형 집자리에서 유사겹아가리(類似二重口軟)+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유사겹아가리+구멍무늬+낟알무늬가 확인되며, 소형 집자리에서는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바리토기|민무늬 바리 토기(鉢形土器)]] 등이 출토되어 시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에서 [[몸돌|몸돌]], [[박편석기|박편(薄片)]], 미완성 석기, 작업돌, [[찰절흔|찰절흔(擦切痕)]] 석재(石材), [[숫돌|숫돌(砥石)]] 등 을 통해 석제품의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집자리는 15기이다. 미완성 석기는 크기와 형태를 고려할 때 돌살촉과 [[돌창|돌창(石槍)]] 및 [[작살|작살]]이 많으며 간혹 [[돌낫|돌낫(石鎌)]]이나 [[석도|돌칼(石刀)]]이 확인된다. 8·18호는 다양한 석기, 4·19호는 돌살촉, 17호는 돌칼, 17호는 돌창을 제작하는 등 특정 유물만 제작하는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귀지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내부에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이 설치되었고, 한쪽 모서리에서 구릉 아래쪽으로 배수구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이다. 세장방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4·6주식(柱式)이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과 평지식이 확인되며, 짧은 벽 쪽에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모든 집자리에서 확인되지만 외부로 돌출된 배수구는 유실되어 일부에서만 확인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로, 단독무늬는 [[톱니무늬|톱니무늬(鋸齒文)]], 낟알무늬, 구멍무늬, 낟알무늬, 복합무늬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軟短斜線文), 골아가리 톱니무늬(口脣刻目鋸齒文), 구멍 톱니무늬가 있다. 석기류는 간 돌검, 돌살촉, 돌창, 돌낫,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및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다. 취락 유적의 집자리에서 출토된 목탄의 수종 분석을 통해 참나무(상수리나무류), 굴피나무, 가래나무, 느릅나무, 팽나무류, 물푸레나무류의 6종을 확인하였다. 목재의 특징은 온대 활엽수의 전형적인 구성 수종이며 모두 큰 나무로 자라는 교목으로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취락 유적 8호 24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560~400년), 18호 236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05~210년), 23호 22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10~200년)로 확인되었다. 귀지 유적은 Ⅰ-1호 29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20년), Ⅲ-14호 28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년), Ⅲ-34호 280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형태와 구조, 출토 유물 등을 통해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서 검단리 단계까지 연속적으로 조성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4년 12월 07일~2005년 09월 15일 || 울주 외광리 취락유적 || 2007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7년 09월12일~2008년 03월 25일 || 울산외광리귀지유적 || 2010 || 울산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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