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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역삼동 유적(서울 驛三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역삼동 유적(서울 驛三洞遺蹟) | 이칭별칭=서울 역삼동 유적, 서울 도곡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542-2(舊 성동구 역삼동) 일원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기둥 구멍]],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깊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역삼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송만영 }} ==설명==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542-2(舊 성동구 역삼동) 일원에 위치한다. 1966년 숭실대학교 사학과의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해 8월에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집자리|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한강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변 해발 90m의 야산 정상부에 입지한다. [[집자리|집자리]]는 장축이 남서-북동 방향이고,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바닥에 다량의 목탄 편이 깔려 있어 화재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길이 16m, 너비 3m의 대형이며,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약 0.7m이다. 네 벽면을 따라서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1~2m 간격으로 배치되었으며, 기둥 구멍은 지름 0.1~0.15m이다. 일부 기둥 구멍 내에서 불탄 채 남아 있는 숯 기둥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입구는 벽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기둥 구멍이 없는 남쪽 짧은 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출토된 토기는 크게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로 구분되는데, 민무늬 토기에는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등의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있고, 입술에 골아가리가 장식된 대형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도 출토되었다. 붉은 간 토기는 2개체 분이 출토되었는데, 아가리가 짧게 벌어진 [[짧은목항아리|짧은 목 항아리(短頸壺)]]이다. 석기는 [[양날돌도끼|양날 돌도끼(兩刃石斧)]] 3점, [[돌끌|돌끌(石鑿)]] 2점,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2점, [[반달돌칼|반달 돌칼]] 1점, [[숫돌|숫돌(砥石)]] 6점, [[갈돌|갈돌]]과 [[갈판|갈판(耉石棒·耉石)]] 각 1점이 출토되었다. 한편 역삼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조합상을 표지로 하여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驛三洞式土器)]] 또는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구멍무늬와 골아가리 무늬 장식이 있는 깊은 바리 토기와 골아가리 무늬 혹은 민무늬 항아리 모양 토기,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접시 모양(高杯形)의 붉은 간 토기를 포함하기도 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66년 || 역삼동 주거지 발굴보고 || 1986 || 한국사학회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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