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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여산리·두여리 유적(益山 礪山里·斗餘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여산리·두여리 유적(益山 礪山里·斗餘里遺蹟) | 이칭별칭=익산 여산리·두여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55-5·두여리 산23-3·산1-5 일원 | 성격=주거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돌살촉]], [[홈자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규정 }}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55-5·두여리 산23-3·산1-5 일원에 위치한다. 금마-연무대 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200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6기와 그 밖에 백제~조선 시대 무덤 등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서쪽으로 용화산(해발306m)에서 발원한 여산천이 북으로 흐르며 여산천으로 뻗어 내린 능선 정상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능선 정상부와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면 형태는 원형과 말각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원형은 5기(1·2·4~6호)이고, 말각방형은 1기(3호)이다. 크기는 말각방형인 3호가 길이 3.34m, 잔존 너비 1.5m, 깊이 0.19m, 면적 24㎡로 가장 크고, 원형은 지름 3.45~4.7m, 면적은 10.5~20.5㎡이다. 원형 6기는 모두 바닥면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내부 양쪽에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말각방형인 3호와 원형인 4호는 서로 중복되어 있는데 말각방형을 원형이 파괴하고 만들어져 원형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형의 경우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지만, 말각방형은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출입구는 2·5호에서 확인된다. 출입구는 서쪽방향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 점토로 단段을 두거나 벽면에 단 시설을 하였다. 벽 기둥 구멍은 4호에서 보이며 벽 가장자리를 따라 원형의 작은 기둥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바닥면과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는 진흙으로 불 다짐 처리하였다. 유물은 주로 타원형 구덩이 내부와 주변에서 출토되었는데, 타원형 구덩이에는 일부 [[숫돌|숫돌(砥石)]]이 놓여 있었으며, 2호의 타원형 구덩이에 있는 기둥 구멍 위에는 [[외반구연토기|외반 구연 토기(外反口緣土器)]]가 놓여 있었다. 이 밖에도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돌살촉|돌살촉(石鏃)]]이 대부분인데 모두 [[슴베식돌살촉|슴베식(有莖式)]]이나 편으로 출토된 것 가운데 1점은 슴베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돌끌|돌끌(石鑿)]], [[삼각돌칼|삼각 돌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숫돌|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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