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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어량리 상발·중발 유적(益山 漁梁里上鉢·中鉢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어량리 상발·중발 유적(益山 漁梁里上鉢·中鉢遺蹟) | 이칭별칭=익산 어량리 상발·중발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 734-1(상발)·717-4(중발)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달도끼]], [[돌살촉]], [[간 돌검]], [[독무덤]], [[민무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양영주 }}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 734-1(상발)·717-4(중발) 일원에 위치한다. 익산 일반 산업 단지 진입 도로 개설 공사에 앞서 2013~2015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동서 방향으로 짧게 뻗은 구릉 정상부에 분포하고 있으며, 곡간부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중발 가구역, 남쪽은 중발 나구역, 나구역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지점을 상발 유적으로 구분하였다.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그중 청동기 시대 유구는 가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4기·[[구덩이|구덩이]] 10기·[[옹관묘|독무덤(甕棺墓)]] 2기, 나구역에서 집자리 10기, 상발 유적에서 독무덤 3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가구역에서 4기, 나구역에서 10기 등 모두 14기이다. 가 구역 집자리는 구릉 정상에 동서 방향으로 약 5~10m 정도 거리를 두고 열을 지어 있으며 집자리 주변으로 구덩이가 일정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나구역은 구릉 정상부에 동서 방향으로 2기씩 무리지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분포하며, 능선 중단부에서 집자리 6기가 중복되어 있다. 집자리는 모두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 1기를 제외하면 13기가 (타)원형이다. 집자리는 대부분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는데 가구역 1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대칭되게 4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이다. 바닥면은 대부분 불 다짐 처리하였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돌살촉|돌살촉(石鏃)]], [[간돌검|간 돌검]],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끌|돌끌(石鑿)]],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파괴가 심한 것을 제외하면 제일 작은 나 구역 2호 집자리가 10.3㎡, 제일 큰 가구역 2호 집자리가 29.6㎡이다. 면적별로는 11㎡ 미만의 소형 1기(나구역 2호), 12~24m² 내외의 중형 4기(가구역 1호, 나구역 1·3호), 25~30m² 내외의 대형 1기(가구역 2호)로 집자리 규모에 있어 차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구덩이는 가구역에서 10기가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집자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남쪽 사면부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장 시설로 보인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방형 등 다양하다. 바닥면은 특별한 시설 없이 기반층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가락바퀴|가락바퀴]], 돌끌,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가구역에서 2기, 상발 유적에서 3기가 조사되었다. 모두 무덤 구덩이를 ‘U’자 모양으로 파고 민무늬 토기를 세워(直置)서 안치하였는데, 가 구역 2호는 바닥에 석재 1매를 깔았으며 상발 유적 1호는 비스듬히 세웠다. 토기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무덤의 상부는 훼손되어 [[뚜껑돌|뚜껑돌]]의 존재를 알 수 없다. 무덤 구덩이의 지름은 0.48~0.9m, 깊이는 0.37~0.8m 정도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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