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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흥동 유적(鳳山 新興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흥동 유적(鳳山 新興洞遺蹟) | 이칭별칭=봉산 신흥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황해북도 봉산군 봉산읍 신흥동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팽이 토기]], [[돌창]], [[간 돌살촉]], [[돌도끼]], [[별도끼]], [[반달 돌칼]], [[돌대팻날]], [[가락바퀴]], [[그물추]], [[갈판]], [[청동 단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봉산군 봉산읍 신흥동에 위치한다. 봉산벌이 긴 구릉을 끼고 펼쳐져 있는데 유적은 구릉 동남쪽 끝에 놓인 록과산과 휴류산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동고서저의 계단상의 비탈에 입지한다. 195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7기가 확인되었으나, 유적이 파괴된 정도를 보면 더 많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는 서로 3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놓여 있으며 유적의 지형을 이용해 동쪽에 나들이 문을 낸 것이 있다.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장축을 남북으로 두고 얕은 움을 파고 만든 반움집이다. 2호 집자리는 움이 얕아 지상 가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길이 12m, 너비 4m, 깊이 0.1m로 가운데 사이 벽을 막아 2개의 방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고, 불탄 기둥 그루가 확인된다. 유물은 출입구와 떨어진 서벽 가에서 출토되었다. 3호는 길이 10.2m, 너비 4.6m, 깊이 0.45m로 내부에는 바닥에 흙을 돌려 원형으로 마련한 화덕과 기둥 구멍이 있다. 유물은 전형과 변형의 [[팽이토기|팽이 토기]]를 비롯하여 [[돌창|돌창(石槍)]],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도끼|돌도끼]],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물고기 모양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가락바퀴|가락바퀴]], [[그물추|그물추]], [[갈판|갈판(碾石)]] 등의 [[석기|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7호 집자리에서는 [[청동단추|청동 단추(銅泡)]] 1점이 나왔고, 3호에서는 불탄 노끈이 무더기로 나와 당시에 쓰던 그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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