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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성동 유적(平壤 新成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성동 유적(平壤 新成洞遺蹟) | 이칭별칭=평양 신성동 유적, 평양 신성동 돌덧널무덤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양직할시 순안구역 신성동 | 성격=고분 | 키워드=[[돌널무덤]], [[청동 거울]], [[간 돌살촉]], [[비파형동검]], [[검은 간 토기]], [[비파형동검 문화]], [[세형동검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신성동에 위치한다. 2003년 5월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무덤의 바닥에는 길이 0.04~0.1m 정도의 돌들이 한 벌 깔렸으며, 나무널(木棺)이 썩어 숯처럼 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덤방은 길이 1.6m, 너비 0.9m, 깊이 0.7m이며, 돌을 쌓아 올린 네 벽의 면은 매끈하지 않다. 뚜껑돌(蓋石)은 길이 1.9m, 너비 1.m, 두께 0.1m의 판돌(板石) 1매로 되었으며, 벽석(壁石)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공간에도 돌을 채웠다. 유물은 내부의 [[시상|주검 받침돌(屍床石)]] 위에서 출토되었는데, [[청동거울|청동 거울(銅鏡)]]과 [[간돌살촉|간 돌살촉]]은 북동쪽 모서리,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과 ‘+’자 모양의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는 북동쪽 벽에 치우친 중앙부,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는 남벽 쪽에서 출토되었다. 출토 상태로 보아 비파형동검과 칼자루 끝 장식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칼자루(劍把)가 장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비파형동검은 전체적으로 너비 가 좁고 긴 모양이어서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 거울은 지름 9.9㎝이며 2개의 꼭지 손잡이(鈕)가 있고, 격자무늬와 번개무늬(雷文)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청동 거울과 유사한 무늬가 있는 것으로는 삼각무늬가 도안된 성천군 출토품이 있는데, 신성동 출토품은 이보다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이 무덤은 [[비파형동검문화|비파형동검 문화]]에서 [[세형동검문화|세형동검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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