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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소사동 유적(平澤 素沙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소사동 유적(平澤 素沙洞遺蹟) | 이칭별칭=평택 소사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524 일원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서길덕 }} ==설명==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524 일원에 위치한다. 도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4~2006년 조사가 진행되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81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25~45m에 해당하는 구릉 지대로, 남쪽으로 약 2.5㎞ 떨어져 안성천이 흐르고 있다. 북쪽에 [[평택비전동.죽백동유적|평택 비전동·죽백동(소사벌) 유적]], 동쪽에 [[안성만정리유적|안성 만정리]] 및 [[안성만정리신기유적|만정리 신기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소사동 유적은 모두 5개 지점으로 구분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집자리는 가지점에 28기, 다지점에 9기, 라지점에 44기가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의 배치는 구릉 마루의 평탄면과 남쪽 및 동쪽 비탈에 ‘L’자(가지점) 와 ‘ㅡ’자(다지점)의 배치 형태를 보이거나 라지점과 같이 구릉의 정상부를 공지로 남겨둔 채 비탈에만 집자리를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장타원형의 마을 구조를 갖고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분된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모두 26기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장축은 등고선과 나란하며 크기는 너비 2.5~4m, 길이 10m 이상이다. 세장방형 집자리가운데 라-28호는 당초 길이 6.4m에서 4m를 연장하여 증축한 흔적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여기서는 처음에 짧은 벽 쪽에 시설한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1열(3개)을 폐기하고 바닥으로 사용한 점이 관찰된다. 장방형 집자리는 너비가 4m 이상인 것과 미만인 것으로 구분된다. 너비가 4m 이상인 집자리는 총 4기(다-6호, 라-6·13·21호)로, 길이는 6~7m이다. 화덕 자리가 중앙축 선상에도 있지만 한 쪽으로 치우친 것도 확인되는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형태의 집자리에서는 유적 내에서 가장 이른 단계의 유물이 출토되는 특징이 있다. 장방형 집자리 가운데 너비가 4m 이하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18기로, 전체 크기는 길이 5~10m, 너비 2~3.5m에 이른다. 기둥 구멍은 6주식과 8주식의 정연한 구심 구조를 보이는 것도 있다. 특히 라-22호에서는 추정 선반 및 출입구 시설과 같은 특이 시설도 확인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모두 10기로, 길이 2~4m, 너비 1.5~3m의 소형과 길이 5~6m, 너비 4~5m의 대형으로 구분된다. 소형인 방형 집자리는 중앙 1주식의 구심 구조를 보이는데 화덕 자리가 있는 경우 기둥 구멍이 없다. 대형인 방형 집자리는 화덕 자리는 있거나 없이고 기둥 구멍은 2주식, 4주식, 6주식으로 정연한 배치를 보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어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로 판단된다. 특히, 라-7호에서는 한쪽 모서리에 추정 출입구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단을 지어 바닥보다 높다. 이 단 시설의 크기는 길이 1.2m, 너비 0.8m이며, 단을 중심으로 양쪽에 기둥 구멍들이 일정 간격으로 위치하는 점이 특징이다. 원형 집자리는 2기(가-4·26호)이다. 모두 구릉 마루에 입지하고 있으며 지름은 4m 내외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가 있다. 기둥 구멍은 2주식 구심 구조이고 타원형 구덩이는 중앙 또는 약간 치우쳐서 위치하는데 구덩이 안에서 돌가루(石粉)가 확인되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민무늬]]를 비롯해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二重口緣)]], [[짧은빗금토기|짧은빗금(短斜線)]],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口脣刻目)]] 등 다양한 무늬가 서로 결합되거나 단독으로 베풀어졌다. 이밖에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臺附土器)]], [[바닥구멍토기|바닥 구멍 토기(低部透孔土器)]], [[가락바퀴|가락바퀴]],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살촉|돌살촉(石鏃)]], [[간돌검|간 돌검(石劍)]],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合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돌끌|돌끌(石鑿)]], [[갈판|갈판(碾石)]], [[갈돌|갈돌(碾石棒)]], 가락바퀴, 그물추, 공이돌, [[천공구|천공구(透孔具)]] 등 다양하게 나왔다. 한편, 20기의 집자리를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값을 측정한 결과, 3010±60 BP ~2300±50 BP로 측정되었다. 연대 보정 결과는 (세)장방형 및 소형의 방형 집자리는 기원전 1240~900년, 송국리식의 대형 방형 집자리는 기원전 670~590년, 원형 집자리인 가-4호는 기원전 310년이 제시되었다.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1&d_idx=4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로의 전환과정을 보여주는 마을유적 울산 구영리유적]", <i>2005 한국고고학저널</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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