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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성남동 유적(三陟 城南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성남동 유적(三陟 城南洞遺蹟) | 이칭별칭=삼척 성남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남동 148-6 일원 | 성격=제사유적 | 키워드=[[제사]], [[제단]], [[돌무지]], [[환구]], [[도랑]], [[구덩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영구 }} ==설명==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남동 148-6 일원에 위치한다. 삼척고등학교 이전 부지에서 확인되었으며 북쪽의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하안 단구이면서 석회암지대 [[돌리네|돌리네(와지)]] 부근의 구릉과 산사면에 입지한다. 유적이 위치한 성남동 일원은 남서쪽에 위치한 근산(505m)의 북쪽 능선에 면해 형성된 해발 50~70m의 하안 단구(해면 변동 단구)로 동쪽에 인접한 사직동의 서쪽에 이른다. 대체로 편평한 일반적인 단구면과는 달리 단구의 북쪽을 중심으로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다수의 요철 면이 잔존한다. 유적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는 B구역 구릉 정상부 평탄면과 부근 사면을 중심으로 [[제사|제사]] 공간이 조성되었다. 북쪽으로는 오십천을, 동쪽으로는 동해를 내려다보며 남쪽의 산지에 둘러싸여 안정적인 단구이면서 동시에 석회암 지대 돌리네(와지)에 인접한 구릉이라는 입지 조건 외에도 [[제단|제단]] 시설로 추정되는 [[돌무지|돌무지(積石)]] 유구, [[환구|환구(還溝)]], [[구|도랑(溝)]], [[구덩이|구덩이]], 그 내부에서 출토된 소형 토제, 석 결정 조각 등 비일상적인 유구들과 유물들의 존재는 제사 공간으로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유구 내에서 불탄 흙이나 흔적, 폐기·매납과 관련된 유물 등 제의 행위의 흔적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구릉 상에 노출된 다양한 형태의 노두(露頭)를 신앙의 대상물로 삼아 구릉 내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정상부 평탄면 두 곳에 제단을 설치해 의례를 행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출토된 유물이 극소량이고 유구 간 중복 예가 많지 않아 유적의 형성 시점과 하한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석제 [[그물추|그물추]]를 반출한 돌무지 유구 2호가 환구 이후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환구와 돌무지 유구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기 이전에 형성되었고 도랑은 이들의 존재를 인식해 주로 외곽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 된다. 또한 취락과 관련된 일상적인 유구와 유물이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 것은 취락이 입지하기에 안정적이지 않은 입지 조건 때문으로, 제사 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내부에 일상적인 기물의 반입이 금지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표본조사 || 2014년 3월 10일 ~ 2014년 3월 28일 || 삼척고 이전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 2014 || 강원고고문화연구원 |- | 발굴조사 || 2014년 6월 16일 ~ 2014년 6월 16일 || 삼척고 이전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 2014 || 강원고고문화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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