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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석천리 유적(益山 石泉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석천리 유적(益山 石泉里遺蹟) | 이칭별칭=익산 석천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낭산면 석천리 220-1 일원 | 성격=고분 | 키워드=[[독널]], [[독무덤]], [[무덤 구덩이]], [[골아가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송국리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종철 }}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석천리 220-1 일원에 위치한다. 1989년 유적에 거주하는 주민이 구릉의 일부를 절토하던 중 단애면에 박혀있는 [[독널|독널(甕棺)]]을 발견하고 국립박물관에 신고하여 조사가 이루어졌고 2기의 [[독무덤|독무덤(甕棺墓)]]이 확인되었다. 1991년에는 같은 주민에 의해 수습된 독널 1점이 인수되었는데 1989년에 조사된 독널과 유사한 기형이다. 석천대(舊 下石里) 마을 뒤편에 자리한 해발 20미터 정도의 능선 북쪽 말단부에 위치한다. 조사된 2기의 독널은 1m 정도 떨어져서 각각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수직으로 파내려간 [[묘광|무덤 구덩이(墓壙)]]의 바닥에 납작한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독널을 안치하였으며, 납작한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뚜껑을 삼았고 뚜껑 위에는 다시 판돌로 된 큰 뚜껑돌(蓋石)을 놓아 이중으로 처리한 직치(直置)의 돌 뚜껑 홑 독널(石蓋單甕棺) 형식이다. 1호 독널은 높이 0.53m, 구경 0.22m, 바닥 지름 0.1m이고, 2호는 높이 0.5m, 구경 0.24m, 바닥 지름 0.1m이다. 독널로 사용된 [[토기|토기]]는 구연이 직립하고 몸통의 상부 혹은 중부에 몸통의 최대 지름을 두면서 저부로 갈수록 축약되는 형태이며 바닥 면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다만 2호 독널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로 1호와 차이를 보인다. 석천리 유적에서는 독널 이외에 다른 유물은 출토되지 않아 유적의 연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독널로 사용된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가 직립 구연 형태이고 골아가리가 새겨져 있는 점과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공주남산리유적|공주 남산리]], [[거창대야리유적|거창 대야리 유적]] 등에서 보이는 독무덤의 특성을 고려하면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현장조사 || 1989년 11월 || None || None || 부여박물관 |- | 지표조사 || 1991년 01월 06일 || None || None || 국립전주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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