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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석우리 유적(扶餘 石隅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석우리 유적(扶餘 石隅里遺蹟) | 이칭별칭=부여 석우리 유적, 부여 석우리 절골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 산14-5 일원 | 성격=고분 | 키워드=[[고인돌]], [[돌널무덤]], [[송국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손준호 }} ==설명==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 산14-5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남쪽으로 돌출된 해발 25~40m의 구릉 사면부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는 2009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고인돌|고인돌]] 3기와 [[돌널무덤|돌널무덤]] 12기가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크게 6개의 무리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무리에는 1~5기의 무덤이 집중된다. 무리와 무리 사이의 간격은 20~40m 정도이다. 고인돌은 탁자식과 뚜껑돌식의 서로 다른 형식이 공존한다. 돌널무덤은 모두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판돌을 이용하여 돌널을 축조한 후 뚜껑을 덮은 형태이다. 구덩이는 모두 장방형을 이루면 1~3단으로 굴착하였다. 구덩이의 바닥에 판판한 돌을 깐 것이 3기, 작은 구덩이가 확인된 사례가 4기이다. 유물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 [[통자루간돌검|통 자루 간 돌검]]이 각 1점씩 출토되었다. 이 중 고인돌 출토 간 돌검은 의도적으로 파손한 후 껴묻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과 무덤의 형식을 볼 때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 이외에 다른 유구가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취락의 공동 묘지적 성격을 갖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송국리 유형의 일반적인 무덤떼와 구분되는 특징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공존하는 점,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과 [[독무덤|독무덤]]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점, 비교적 넓은 범위에 몇개의 군집을 이루며 무덤떼가 형성된 점을 들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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