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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석남리 유적(高敞 石南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석남리 유적(高敞 石南里遺蹟) | 이칭별칭=고창 석남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석남리 산17-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항아리]], [[돌도끼]], [[돌끌]], [[삼각 돌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진 }} ==설명== 전라북도 고창군 석남리 산17-1 일원에 위치한다. 전라북도에서 시행하는 고창 상하-구시포간 지방도 확·포장 공사 일환으로 2010~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5기와 원삼국 시대 [[분구묘|분구묘]]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적은 상하면 북쪽의 장군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여러 갈래의 지류 중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내린 완만한 구릉(해발 20m)의 정상부에 자리하며 주변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모두 원형이며, 남은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2기를 제외하면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구덩이]]가 시설된 전형적인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지름은 4m 내외이고, 잔존 깊이는 0.14~0.78m 정도이다. 1호는 1-1호와, 2호는 2호 움무덤과 중복되었으며, 3·4호는 후대 분구묘 및 [[민묘|민묘]]가 들어서면서 훼손이 심하게 이루어졌다. 타원형 구덩이는 1호, 1-1호, 2호에서 확인되었다. 1-1호를 살펴보면,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구멍|기둥 구멍(柱穴)]]이 확인되지 않았고 타원형 구덩이 내부와 주변에는 토기 편과 석기들이 확인되었다. 동벽 쪽에는 집자리 바닥면에서 벽에 잇대어 마련한 단 시설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깊이가 깊고 한 쪽으로 치우져 자리하고 있으며, 평탄면의 너비(0.3m)로 보아 출입 시설의 계단 또는 선반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1-1호와 2호에서만 총 33점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분류되며 이 가운데 토기류가 21점, 석기류가 11점이다. 토기류는 내만 구연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몸통, 축약된 저부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넓은 바닥 면의 [[민무늬토기항아리|민무늬 토기 항아리(壺)]]가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도끼|돌도끼(石斧)]]·[[돌끌|돌끌(石鑿)]]·[[굴지구|굴지구]]·[[삼각돌칼|삼각 돌칼(石刀)]]·[[갈판|갈판]]·[[고석|고석(敲石)]] 등이 확인된다. 집자리의 축조 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이 2530±30 BP(1호), 2450±30 BP(1-1호), 2640±50 BP(2호)로 산출됨에 따라, 대략 기원전 9~7세기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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