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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상예동 유적(西歸浦 上猊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상예동 유적(西歸浦 上猊洞遺蹟) | 이칭별칭=서귀포 상예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983 일원 | 성격=취락 | 키워드=[[민무늬 토기]], [[경질무문토기]], [[사발모양토기]], [[갈돌]], [[청동거울]], [[청동 검]], [[세형동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진환 }}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983 일원에 위치한다. 제주 예래 휴양형 주거 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시굴 조사 결과, 많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구가 밀집된 일부 구간을 원형 보존 조치하고 나머지 구간에 대해 2008~2010년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유적은 해안단구의 상단인 해발 30~68m의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자리하며 주변에 대왕천과 예래천이 휘돌아 해안으로 연결되어 음용수 획득에 유리하며 해안을 이용한 대내외적 교류가 편리하다. 이러한 입지는 제주도 송국리식 취락의 입지와 유사하고, 북동쪽의 협로를 통해서만 유적으로 이어져 천혜의 요새지형이다. 유적에서는 [[집자리|집자리]] 265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 16기, [[구덩이|구덩이]] 2,104기, [[불탄흙유구|불탄 흙 유구(燒土遺構)]] 24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2기, [[도랑|도랑(溝)]] 16기, [[환구|환구 시설(環溝施設)]] 7기, [[집석유구|돌더미 유구(集石遺構)]] 3기, [[배수유구|배수 유구(背水遺構)]] 6시, [[집수유구|집수 유구(集水施設)]] 45기, [[매납유구|매납 유구(埋納遺構)]] 3기, [[폐기장|폐기장(廢棄場)]] 1개소, [[수로|수로(水路)]] 1개소 등 총 2,493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원형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며, 구역별로 일정한 무리를 이루며 빈터(空地)가 형성되었다. 집자리 주변에는 저장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구덩이가 집중적으로 축조되어 있다. 의례 행위와 관련된 시설로 판단되는 돌더미 유구는 주거 공간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성된 점으로 미루어 시간의 변화 속에서 단위 주거군의 변화 양상과 궤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취락의 동쪽으로는 남북 양 끝으로 하천이 흐르고 좁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의 중앙부에 직교하는 방향으로 2~3중의 환구 시설이 축조되어 있다. 이러한 환구 시설은 협곡을 사이에 둔 매우 좁은 Ⅱ구역의 입구 부분에 한정해 집중적으로 확인되는데 취락의 출입구를 통제하던 시설인 것으로 추정된다. 취락의 내부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배수 시설이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 사면을 따라 용천수가 흐른다. 또한 배수 시설의 주변으로는 특별한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고 정형성이 없는 돌무지 시설이 조성된 점을 미루어 볼 때 [[수변의례|수변 의례(水邊儀禮)]]와 관련된 유구로 판단된다. 유물은 주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나 [[경질무문토기|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이고, 바리와 항아리 모양이 대부분이다. 특징적인 토기로는 [[손잡이달린토기|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원뿔모양토기|원뿔 모양 토기]],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盤形土器)]] 등이 있으며 또한 연질과 경질의 [[두드림무늬토기|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도 출토되었다. 석기는 [[공이돌|공이돌(敲石)]], [[갈돌|갈돌(碾石)]], [[오목돌|오목돌(凹石)]] 등 식량 처리구가 다수이다. 그 외에는 [[청동거울|청동 거울(銅鏡)]]과 [[청동검|청동 검(銅劍)]] 편이 출토되었는데 청동 거울은 Ⅰ-1구역 520호 구덩이에서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의 주연부 일부 파편이 확인되었다. 문양은 남아있지 않지만 단면 형태가 타원형이라는 점에서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의 주연부 편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지름 2.64~2.88m, 깊이 0.15m으로 내부에서 다량의 토기 편이 출토되어 폐기 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잔무늬 거울의 파편은 추정 지름 12~13㎝이며, 잔존 너비 1.1㎝이다. 경판이 떨어진 부분에 마연 흔적이 있어 재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청동 검은 Ⅰ-1구역 48호 집자리에서 세형동검의 재가공 편이 출토되었다. 48호 집자리는 원형의 송국리식으로 지름 4.14~4.16m, 깊이 0.42m이다. 타원형 구덩이가 중앙에 위치하며 구덩이 내에 두 개의 기둥 구멍이 위치한다. 내부에서는 경질 무문 토기 편을 비롯해 작은 토기, 공이돌, 갈돌(碾石),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 원판 모양 토제품 등 35점이 출토되었다. 청동 검 편은 타원형 구덩이 북쪽 바닥에서 출토되었으며 [[세형동검|세형동검]]의 선단(先端)을 재가공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과 뒷면 양쪽에 몸통(身部)에서 [[슴베|슴베(莖部)]]까지 [[피홈|피 홈(血溝)]]이 잔존하며, 단면 형태는 마름모 모양이다. 마모흔이 확인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장신구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Ⅰ-1구역 5호 집자리 2520±40 BP, 36호 집자리 2180±40 BP, 520호 구덩이 2120±40 BP, Ⅲ구역 15호 구덩이 1640±40 BP, 12호 집수 유구 1460±40 BP로 제시되었다. 상예동 유적은 신석기 초창기에 소규모 생활 유적이 존재하였고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취락이 형성되어 초기 철기 시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취락 유적이다. 상예동 유적과 비슷한 시기의 [[강정동유적|강정동 유적]], [[화순리유적|화순리 유적]]과 더불어 제주도 서남부 지역의 거점 취락으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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