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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상언리 유적(星州 上彦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상언리 유적(星州 上彦里遺蹟) | 이칭별칭=성주 상언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언리 696-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단사선문]], [[톱니무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언리 696-3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현풍~김천간 고속 국도 건설에 앞서 2004년 조사하여,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2기, [[구|도랑(溝)]] 2기, [[돌깐유구|돌 깐 유구(敷石遺構)]] 1기, 도랑(溝) 1기, [[구덩이|구덩이]] 2기, [[기둥구멍군|기둥 구멍군(柱穴群)]] 8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구릉 말단부와 충적 대지에 걸쳐 입지하며, 남쪽으로 넓은 충적 대지와 신천이 위치한다. 유적은 크게 1호 도랑을 중심으로 한 제의 공간(祭儀空間)과 2호 도랑과 집자리를 중심으로 한 생활 공간으로 구분된다. 1호 도랑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자연도랑으로 내부에서 [[삼각덧띠토기|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를 비롯하여 석기류, 목기류, 씨앗류, 동물 뼈(사슴 뼈·돼지 뼈)와 작은 토기가 대량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지속적인 제의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호 도랑은 등고선과 나란하게 조성되어 생활 공간의 경계를 이루는 [[환호|환호(還壕)]]로 추정되며, 남쪽 끝 지점의 바닥 부근에는 0.1~0.3m의 [[깬돌|깬돌(割石)]]이 깔려 있다. 도랑과 인접해서 집자리, 돌 깐 유구, [[기둥구멍|기둥 구멍]] 등의 생활 유구가 확인된다. 집자리는 내부에 터널식의 ‘ㄱ’자 모양 구들과 아궁이 시설을 갖추었으며, 바닥과 벽면은 황색점토로 다졌다. 2호 도랑에서는 [[삼각덧띠토기|삼각 덧띠 토기 독(甕)]], 작은 토기, 뚜껑, [[굽다리사발|굽다리 사발(臺附碗)]],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시루|시루]], [[가락바퀴|가락바퀴]], [[그물추|그물추]], 토제품 등의 생활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유적은 초기 철기 시대에 조성된 마을 유적 및 제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이 시기의 유적이 드물 뿐만 아니라 제의와 관련된 유적도 거의 없기 때문에 당시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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