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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상리 유적(大邱 上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상리 유적(大邱 上里遺蹟) | 이칭별칭=대구 상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8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돌널무덤]], [[알 구멍]],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석범 }} ==설명==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8 일원에 위치한다. 2011년 경북과학기술원 학위 과정 부지 조성 사업으로 성림문화재연구원(1구역), 영남문화재연구원(2구역),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3구역)이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8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 [[알구멍|알 구멍(性穴)]] 1기와 [[삼국시대|삼국]]~[[통일신라|통일 신라 시대]], [[조선시대|조선 시대]]의 무덤과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083m의 비슬산에서 내려오는 주 능선의 남쪽 끝자락에 입지하며, 서쪽에는 낙동강이 유입되어 형성된 넓은 충적 평야가 위치한다. 집자리는 1-가구역(1기), 2-나구역(4기), 3구역(3기)에 분포하며, 해발 78~87m에 입지하며 등고선과 나란하게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후대 경작 등으로 일부가 파괴된 상태였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판단되며, 크기가 가장 큰 집자리는 1-나구역 1호로 양쪽 짧은 벽이 유실되었지만, 잔존 길이가 7.22m이다. 내부 시설은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一’자 모양(1-가구역 1호, 2-나구역 4호), ‘ㄱ’자 모양 (3구역 2호)이 있다. 화덕 자리는 2-나구역 4호에 구덩식 1기가 확인되며, 기둥 구멍은 2-나구역 3호 바닥 가운데에서 2개가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모두 지하식의 [[석축형|석축형(石築形)]]이다. 1-가구역 돌널은 길이 1.61m, 너비 0.44m, 깊이 0.34m로 서쪽 짧은 벽(短壁) 쪽에 편평한 [[깬돌|깬돌(割石)]]을 깔아 [[시상|주검 자리(屍床)]]를 마련하였다. 출토 유물은 동쪽 짧은 벽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5점이 확인되었다. 2/3 정도 유실된 2-나구역 돌널무덤은 북쪽 짧은 벽 모서리 바닥에 [[간돌검|간 돌검]] 1점을 부장하였다. 이외에 알 구멍은 2-나구역에서 확인되었다. 자연 암반 위에 둥근 도구를 이용하여 시계 방향으로 돌려 만든 13개의 구멍이 남아 있다. 이는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며, 새겨진 알 구멍은 별자리로 인식하고 있다(김일권, 1998). 유물은 돌널무덤에서 간 돌검, 간 돌살촉, 집자리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간 돌검 편, [[돌끌|돌끌(石鑿)]], [[갈돌|갈돌(碾石)]], [[숫돌|숫돌(砥石)]] 등 20여 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조성 시기는 석축형 돌널무덤과 부장된 간 돌살촉, 돌검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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