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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삼동 고인돌[義王 三洞支石墓]}}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삼동 고인돌[義王 三洞支石墓] | 이칭별칭=의왕 삼동 고인돌, 의왕 삼동 지석묘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의왕시 삼동 416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덮개식]], [[채석흔적]], [[알 구멍]]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우장문 }} ==설명== 경기도 의왕시 삼동 416에 위치한다. 1987년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견하고 1988년 서울대학교에서 발굴하였다. 삼동 고인돌은 원래 3기가 있었는데 안양~부곡 간 도로 공사 과정에서 2기가 없어져 1기만 조사되었다. 발굴된 [[고인돌|고인돌]] 역시 원래의 위치가 부정확하다. 해발 47.37m의 약간 경사진 밭에 입지한다. 고인돌은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이며 덮개돌(上石)은 거정화강암으로 길이 2.2m, 너비 1.6m, 두께 0.6m이고 무게는 약 6톤 정도이다. 이 덮개돌의 윗면에는 [[채석흔적|채석 흔적(採石痕)]]으로 보이는 6~12㎝ 정도 크기의 구멍 9개가 한 줄로 나타나 있고, 지름 6㎝ 가량의 [[알구멍|알 구멍(性穴)]] 1개와 갈다가 만 알 구멍 1개가 확인되었다. 옆면에도 채석 흔적으로 보이는 8~12㎝ 정도 크기의 구멍 4개가 윗면과 같이 줄지어 있어 채석 방법을 알 수 있게 한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1.9m, 너비 1.5m, 깊이 0.17~0.2m이며, 바닥의 기울기는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약 3° 정도 비스듬한데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무덤방의 크기로 볼 때, 바로 펴묻기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부장품은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 보고자는 삼동 고인돌의 축조 과정에 대해, 먼저 덮개돌의 운반과 관련하여 유적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구봉산 기슭의 새골 지역을 채석장으로 판단하였다. 또 운반 및 복원과 관련하여 소요 인원을 추정하여 떼어내는데 4명, 운반 108명, 축조 96명 등 모두 208명이 참여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고인돌의 축조는 움을 파서 구덩이를 만든 다음 바닥을 다져 죽은 사람을 바로 펴묻기로 묻고 고운 흙을 뿌렸던 것으로 보았다. 특히 무덤방에서 채취한 시료들의 P2O3 함량을 분석하여 머리 쪽 방향을 추정하고 산줄기의 흐름과 나란히 하였음을 밝혀냈다. 삼동 고인돌은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고인돌 조사에서 처음으로 토양 성분 검사를 실시하여 매장 풍습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지표조사 || 1987년 || 판교~구리·신갈~반월 간 고속 도로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 1987 || 충북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87년 || 시흥 삼리 지석묘 발굴조사 보고 || 1988 || 충북대학교박물관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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