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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근삼리 고인돌군[龍仁 近三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용인 근삼리 고인돌군, 용인 근삼리 지석묘군 | 키워드=[[고인돌]], [[뗀석기]], [[덮개돌]]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우장문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인돌 | 크기=총 2기 | 소재지=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근삼리 389-1 예아리박물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근삼리 389-1 예아리박물관에 위치한다. 1984년 백안면 근삼리 장개마을 뒷산에 위치하였던 것을 용인시의 향토사학자 이인영씨가 처음 발견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칠성 바위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7기의 [[고인돌|고인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조사 시 2기의 고인돌이 같은 구릉 내에 있었으나, 새로운 길이 조성되면서 1기의 고인돌은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있었다. 이후 1기의 고인돌이 더 확인되었으나 도로 건설로 유실되어 현재는 원위치에 한 기도 없다. 원래 위치에 남아 있던 1호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길이 3.3m, 너비 3.1m, 두께 1.1m이며, 장축은 능선과 나란한 동서 방향이다. 덮개돌의 아래에는 일부 돌이 관찰되나 흙에 대부분 묻혀 있어서 정확한 상항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1호의 아래쪽은 절단되어 붉은 토양이 드러나 있는데 이곳에서 운모편암제 보습(犁先)이 발견된 바 있고, [[밀개|밀개(削器)]]와 [[긁개|긁개(搔器)]] 등의 [[뗀석기|뗀석기(打製石器)]] 4점이 발견되었다. 2호는 1호에서 약 1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1호보다 2m 정도 깎인 경사면 아래로 내려와 있다. 근삼리 고인돌 2기의 덮개돌은 예아리박물관 야외전시관으로 이전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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