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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사양리·문덕리 유적(鎭川 思陽里·文德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사양리·문덕리 유적(鎭川 思陽里·文德里遺蹟) | 이칭별칭=진천 사양리·문덕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826·문덕리 72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가락동식 토기]],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빗살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공민규 }} ==설명==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826·문덕리 723 일원에 위치한다.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1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5기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생활, 생산, 매장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200~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넓게 발달한 지역에 위치하는데 백곡천을 끼고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집자리는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2기씩 군을 이루고 있다.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가장 큰 4호 집자리는 길이 12.6m, 너비 5.6m, 깊이 0.78m이다. 바닥면에 중앙 긴 벽을 따라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 1~2기가 남아 있다. 기둥의 배치는 긴 벽을 따라 2줄의 [[주춧돌|주춧돌(礎盤)]]을 놓았으며, 토기를 두었던 [[구덩이|구덩이]]는 집자리의 한쪽 짧은 벽 좌우에 시설되어 있다.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의 [[가락동식토기|가락동식 토기]]가 주를 이루며, 3호에서는 [[횡주어골문|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의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편, 4호에서 2줄의 가로줄을 긋고 그 안쪽에 [[삼각집선문|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을 새긴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도 출토되었다. 석기는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돌끌(石鑿)]]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에 대한 OSL 연대 측정 결과, 1호는 기원전 1070±100년, 2호는 기원전 1100±140년, 3호는 기원전 980±140년으로 확인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1년 || 진천 사양리 유적 || 2001 || 중앙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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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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