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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봉산리 유적(龜尾 鳳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봉산리 유적(龜尾 鳳山里遺蹟) | 이칭별칭=구미 봉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구미시 산동읍 봉산리 217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돌칼]], [[가락바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도헌 }} ==설명==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읍 봉산리 217에 위치한다. 구미 국가 산업 단지 제4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02년 조사하여 Ⅱ구역에서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4기를 확인하였다. 이외에 Ⅰ~Ⅲ구역에서 [[삼국시대|삼국]]~[[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야트막한 구릉지의 남동쪽 비탈면(斜面) 가운데 높은 지점(해발 56~58m)에서 확인되었으며,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규모는 확인이 가능한 상태였다. 무덤은 좁은 범위에 위치하며, 13·14호는 1.5m 간격으로 나란하고, 15·20호는 4~6m 떨어져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장축 방향이 모두 등고선과 평행하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고, 가장 큰 것은 길이 2.27m, 너비 1.12m, 깊이 0.22m,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49m, 너비 0.59m, 깊이 0.13m이다. 바닥에는 자갈을 깔거나 [[널돌|널돌(板石)]]을 놓아서 [[시상|주검 받침(屍床)]]을 만들었다. 벽은 [[깬돌|깬돌(割石)]]을 쌓거나 널돌을 세워서 만들었으며, 규칙성은 확인할 수 없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나무 덮개(木蓋)를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 유물은 14호에서 미완성 [[돌칼|돌칼(石劍)]], 20호에서 돌로 만든 [[가락바퀴|가락바퀴]]가 확인되었다. 미완성 돌칼은 가장자리를 여러 번 떼어내고 한쪽 끝을 뾰족하게 만든 모양이다. 가락바퀴는 돌을 세밀하게 갈아서 만들었으며 가운데 구멍은 양쪽에서 뚫었다. 유적은 구미 지역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구조와 [[장송의례|장송 의례(葬送儀禮)]]를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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