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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봉길리 유적(慶州 奉吉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봉길리 유적(慶州 奉吉里遺蹟) | 이칭별칭=경주 봉길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산14-3, 13-1, 856, 868, 874, 884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도랑]],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돌널형 유구]], [[붉은 간 토기]], [[그물추]], [[반달 돌칼]], [[돌도끼]], [[가락바퀴]], [[숫돌]], [[검단리식 토기 단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산14-3, 13-1, 856, 868, 874, 884에 위치한다. 1997년 국도 31호선 개설 공사로 산14-3 일대를 울산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였다(봉길 고분군Ⅰ). 2002~2003년 신월성 원전 사업의 일환으로 봉길리 884 일원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봉길리 고분군)과 영남문화재연구원(봉길리 유적)이 조사하였다. 또한, 2003년 월성 원자력 홍보관 건립으로 봉길리 874 일원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봉길리 117-2번지 유적). 2006년에는 근린 생활 시설 건립을 위해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봉길리 13-1을 조사하였다. 이외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등을 목적으로 2007~2008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봉길리 868 일대를 조사하였고(봉길리 유적), 해당 시설 내 환경 친화 단지 조성을 위해 2010년에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봉길리 856 일대를 조사하여 다수의 유구를 확인하였다(봉길리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 유적은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대종천 남쪽 구릉에 입지하며, 동쪽으로 0.3㎞ 정도 떨어져 동해와 만난다. 분포 범위는 남북 1.5㎞, 동-서 0.5㎞ 정도이다. 봉길 고분군Ⅰ과 봉길리 13-1 유적은 대종천과 동해안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구릉에 입지하며, 유적은 약 110m 떨어져 위치한다. 집자리는 3기로 파괴되어 일부만 확인되었다. 봉길리 884 일대의 봉길리 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과 봉길리 고분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은 인접하여 위치한다. 봉길리 유적에서는 [[집자리|집자리]]14기, [[돌널형유구|돌널형(石棺形) 유구]] 1기, [[구|도랑(溝)]] 2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장방형, 방형으로, 길이 3.7~7.1m이다.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이 1개씩 설치되었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4·6·8주식으로 배치되었다. 벽을 따라 설치된 [[벽도랑|벽 도랑(壁溝)]]은 내부에 기둥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불 다짐 처리하였다.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9호에서 확인되었으며, 경사면 아래쪽을 향해 설치되었다. 돌널형 유구는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길이 1.41m, 0.68m, 깊이 0.2m이며, 내부에는 길이 30~50㎝의 [[깬돌|깬돌(割石)]]로 채워져 있다. 도랑은 길이 14~20m, 너비 0.4~0.7m 내외이다. 봉길리 고분군에서는 집자리 2기가 확인되었다. 후대 훼손으로 일부가 유실되었다. 2호는 장방형이며,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3.6m, 너비 1.95m, 깊이 0.21m이다. 봉길리 874 유적(봉길리 117-2번지 유적)은 봉길리 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집자리 2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4.95m, 너비 3.67m, 깊이 0.15m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건립으로 조사된 봉길리 868 유적(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는 가구역에서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형태는 방형이며 길이 3.82m, 너비 2.38m, 깊이 0.36m이다. 내부에 많은 목탄이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길리 856 유적(성림문화재연구원)은 봉길리 868 유적과 0.9m 떨어져 있다. 집자리 10기, 구덩이 9기, 기둥 구멍 2기, 도랑(溝) 8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장방형과 방형이며, 길이 3.7~4m의 소형이다. 화덕 자리는 일부 집자리에서만 확인되며, 구덩식으로 한쪽 짧은 벽에 치우쳐 있다. 기둥 구멍은 바닥 가운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2개씩 설치되는데 6·8주식도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내부에 기둥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기도 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다지거나 불 다짐 처리하여 사용하였다. 외부 돌출구는 3기에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그물추|그물추]],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石斧)]],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의 무늬는 [[겹아가리|겹아가리(二重口緣)]],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낟알무늬|낟알무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안을 따라 이어진 구릉에 동해안 지역에서 확인되는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가 축조된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에서 확인된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봉길리 884 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5호 23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450년), 9호 2730±30 BP(보정 연대 기원전 87년), 봉길리 856 유적(성림문화재연구원) 6호 28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년), 9호 26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400년)로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구조 및 출토 유물을 통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검단리식토기단계|검단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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