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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묵방동 고인돌군[价川 墨房洞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묵방동 고인돌군[价川 墨房洞支石墓群] | 이칭별칭=개천 묵방동 고인돌군, 개천 묵방동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남도 개천시 묵방동 노동자구 일대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널길시설]], [[묵방리식 토기]], [[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간 돌검]], [[간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개천시 묵방동 노동자구 일대에 위치한다. [[고인돌|고인돌]]군과 함께 후대의 [[돌무지무덤|돌무지무덤(積石塚)]], [[산성|산성]], [[가마터|가마터]], [[야철지|야철지(冶鐵址)]] 등 여러 시기의 유적이 있다. 고인돌은 1960년에 처음 발굴 조사하였고, 1984년에도 발굴 조사가 있었다. 묘향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 대동강에 이르는 대동강 제2단구면 들판에 분포하는데, 특히 가치산 기슭에 집중되어 있다. 고인돌은 40여 기가 있는데 모두 지상에 무덤방(墓室)을 마련하였다. 고인돌은 장축이 동서로 놓인 것과 남북으로 놓인 것이 있는데 앞의 것은 덮개돌(上石)의 길이가 1.8~3.3m 내외이며, 뒤의 것은 덮개돌의 길이 3~3.8m 내외이다. 남북으로 놓인 것은 보강 시설이 있는 무덤으로 밖을 둘러싼 두름돌(圍石)이 있고, 막음돌(閉塞石) 시설을 더 견고하게 축조하는 등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무덤방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아 세 벽을 만들고 판돌을 쌓지않은 동쪽이나 남쪽에는 큰 판돌을 세워 문처럼 만들었다. 바닥에는 벽체를 쌓은 것과 같은 크기의 판돌들을 1~2벌 깐 것(24호)과 큰 판돌을 깐 것(20호)이 있다. 2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길이 1.9m, 너비 1.05~1.03m, 높이 0.2~0.3m이며, 20호의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0.8m, 높이 0.3m, 24호의 무덤방은 길이 1.8m, 너비 0.8m, 높이 0.6m이다. 무덤방 둘레에는 막돌을 쌓아 보강 시설을 하고 그 바깥으로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큰돌을 세워 놓았다. 특히 30호 무덤방에서는 무덤방의 문 앞으로 [[묘도|널길(墓道)시설]]이 있어 주목된다. 무덤방 위에는 크고 두꺼운 판돌을 타원형으로 다듬어 올려 놓았다. 유물은 [[묵방리식토기|묵방리식 토기]], [[물고기모양반달돌칼|물고기 모양 반달 돌칼]],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등이 있다. 토기는 흑갈색의 간 토기로 [[젖꼭지손잡이|젖꼭지 손잡이(乳狀把手)]]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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