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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마산리 유적(鳳山 馬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마산리 유적(鳳山 馬山里遺蹟) | 이칭별칭=봉산 마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황해북도 봉산군 마산리 봉산역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서흥강 북쪽 기슭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돌널무덤]], [[구덩식 화덕자리]], [[석기]], [[팽이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봉산군 마산리 봉산역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서흥강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1987~198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집자리]] 10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와 그 밖에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집자리 12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대부분 장축이 남북 방향인 장방형이다. 내부 바닥은 진흙을 깔아 불 다짐 처리하고, 벽에는 작은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바닥 가운데에는 남북 방향으로 [[기둥구멍|기둥 구멍]] 3개를 배치하고 있다. 4호는 길이 5.8m, 너비 5m, 깊이 0.45~0.6m로 바닥의 중심 기둥 자리 남쪽과 북쪽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가 각 1기씩 있다. 13호는 길이 8.2m, 너비 6.2m, 깊이 1.5m로 북쪽 기둥 자리 남쪽에 구덩이를 파고 강돌을 깔고 그 위에 진흙을 얇게 깐 화덕 자리가 있다. 북벽 모서리에는 ‘ㄱ’자 모양으로 윗면이 매끈하게 갈린 돌들이 깔려 있고 주위에 미완성 [[석기|석기]]가 여러 개 있다. 14호는 길이 4.9m, 너비 3.9m, 깊이 0.3m로 바닥 북쪽으로 화덕 자리가 있고, 숯이 깔려 있다. 19호는 평면 타원형으로 길이 2.9m, 너비 2m, 깊이 0.3~0.85m로 규모가 작은 점으로 미루어 창고 시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물은 전형과 변형의 [[팽이토기|팽이 토기]]가 함께 보이며, 겹아가리(二重口緣)에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평양호남리남경유적|호남리 남경 유적]]에서 나온 팽이 토기와 비교하면 남경 2기와 3기 사이의 상대 연대를 보인다. 석기로는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돌도끼|돌도끼]], [[돌자귀|돌자귀(石手斧)]], [[돌망치|돌망치(石鎚)]], [[돌끌|돌끌(石鑿)]], [[돌대팻날|돌 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그물추|그물추]], [[숫돌|숫돌(砥石)]], [[돌괭이|돌괭이(石嵩)]], [[돌창|돌창(石槍)]] 편, [[찌르개|찌르개]], [[가락바퀴|가락바퀴]],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돌돈|돌돈(石貨)]], 돌구슬 등이 있다. 석기 형태가 다양하고 종류도 많으며 돌도끼는 길이가 20㎝ 이상인 것도 있다. 토기와 석기 형태 분석을 통하여 마산리 유적은 호남리 남경 유적과 [[영변세죽리유적|세죽리 유적]]의 중간 단계에 놓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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