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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청동기 시대 독무덤[靑銅器時代甕棺墓]}}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청동기 시대 독무덤[靑銅器時代甕棺墓] | 이칭별칭=독널무덤, 옹관묘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금강 유역 | 관련 유적=거창 대야리 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토기]], [[바리모양토기]], [[대롱옥]],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금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승옥 }} ==설명== [[고인돌|고인돌]],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 중의 하나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독(甕)을 사용하여 주검(屍身)이나 뼈를 묻는 무덤 양식이다. 토기의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유아 전용의 무덤이거나 성인의 시체를 썩혀 육탈(肉脫)된 유골을 안치(洗骨葬)하기 위한 무덤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의 독널은 주로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일상 용기)를 사용하지만 [[익산석천리유적|익산 석천리 유적]]에서 발견된 독널은 직립 구연(直立口緣)의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를 사용하여 주목된다. 독널무덤은 전통적으로 독의 아가리를 납작한 깬돌(割石)이나 판돌(板石)로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독의 상부를 토기 편이나 소형의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로 덮는 구조가 발견되고 있다. 후자의 예로서는 [[논산마전리유적|논산 마전리]] 6호와 22호, [[익산화산리유적|익산 화산리]] B1호와 B2호, [[익산무형리고분|익산 무형리 유적]]에서 지표 수습된 독널을 들 수 있다. 독널의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구멍은 배수(排水)나 방습(防濕), 혹은 의례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독무덤은 독널의 안치 방법에 따라 독을 수직으로 세우는 직치(直置)와 비스듬히 눕혀서 안치하는 사치(斜置)로 나눌 수 있다. 토기로 구연부를 막는 독무덤은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로 보는 한 모두 사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납작한 돌로 막는 독무덤의 안치 방법은 직치와 사치가 비슷한 비율로 발견된다. 독무덤은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공주남산리유적|공주 남산리]]·[[공주산의리유적|산의리]]·[[공주송학리고분|송학리]]·[[공주안영리유적|안영리]], 익산 석천리·무형리, 논산 마전리, [[군산아동리유적|군산 아동리 유적]] 등 주로 금강 유역 일대에서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등과 함께 발견되지만 이외에도 [[곡성연화리유적|곡성 연화리]], [[거창대야리유적|거창 대야리 유적]] 등지에서도 확인된다. [[껴묻거리|껴묻거리]]는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간헐적으로 [[대롱옥|대롱옥(管玉)]]이 발견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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