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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도내동·원흥동 유적(高陽 道乃洞·元興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도내동·원흥동 유적(高陽 道乃洞·元興洞遺蹟) | 이칭별칭=고양 도내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원흥동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움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권중 }} ==설명==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원흥동에 위치한다. 2011~2012년 고양 원흥 보금자리 주택 지구 개발 사업으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38기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 [[구덩이|구덩이]], 고려~조선 시대 집자리와 [[움무덤|움무덤(土壙墓)]] 등이 확인되었다. 주변은 해발 30~70m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이 구릉의 동쪽 끝 부분에 유적이 위치한다. 동쪽에는 한강의 지류인 창릉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형성된 충적지가 위치한다. 서북쪽으로 인접하여 [[고양도내동유적|고양 도내동 유적]]이 입지한다. 도당 유적1~3은 도내동 유물 산포지 1~3에 해당하는데 동일 구릉의 북서쪽, 북동쪽, 남쪽에 각각 분포하며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각각 도당 유적1에서 4기, 도당 유적2에서 11기, 도당 유적3에서 14기, 나무드머리 유적에서 9기를 확인하였다. 전반적으로 밀집도가 낮은 편이지만 도당 유적2에서 3~10호가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집자리는 30~45m 내외의 구릉 능선 및 사면에 입지하며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하다. 평면 형태는 대략 방형 14기, 장방형 21기, 세장방형 3기 정도이다. 세장방형은 대형, 장방형은 중형이고 소형은 장방형과 방형이다. 크기는 다양한데 길이는 2.2~7.5m 정도이고, 도당2-3호가 길이 13.1m, 너비 4.1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집자리의 크기에 따라 중·대형인 장방형은 중심 기둥 열과 벽 기둥 열이 확인되고, 소형의 장방형과 방형은 중심 기둥이 1개이거나 없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無施設式)과 구덩식(竪穴式)으로 구분되며, 무시설식이 다수를 차지한다. 대체로 1~3개가 설치되어 규모에 비례하는 편이지만, 나무드머리 유적에서는 소형의 방형인 2호와 4호에서 각각 3개와 2개가 설치되기도 한다. 저장 구덩이는 긴 벽 또는 모서리에 열을 이루거나 1개 또는 그 이상이 설치되고, 중형의 방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1~2개가 확인된다. 유물은 토기의 경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민무늬토기|민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이외에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대형 항아리(大形壺) 등도 있다. 석기는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바퀴날돌도끼|바퀴날돌도끼(環狀石斧)]],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반달돌칼|반달돌칼]],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등이 출토되었다. 석기 가운데 [[돌살촉|돌살촉]]은 통슴베식(一段莖式)과 일체형(一體形)이 다수를 차지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2460~2420 BP로 검출되어 절대 연대로 볼 때 기원전 6~5세기로 판단된다. 도내동 도당·원흥동 나무드머리 유적은 인근의 원흥동 유적, 도내동 유적과 동일 시기의 유적으로, [[인천중산동유적|인천 중산동 유적]]과 같이 중·소형의 집자리로 마을을 구성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양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최대의 마을이며, 남한에서 서북 지역의 지역색을 띠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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