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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덕신리 유적(蔚州 德新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덕신리 유적(蔚州 德新里遺蹟) | 이칭별칭=울주 덕신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572-6~8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구덩이]], [[집자리]], [[고인돌]], [[움무덤]], [[솟대 유구]], [[석열]], [[도랑]], [[돌 두름식 고인돌]], [[마디 자루 간 돌검]], [[통자루 간 돌검]], [[송국리 문화권]], [[검단리 문화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572-6~8 일원에 위치한다. 덕신리 주유소 신축으로 2002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가 조사하여(덕신리 유적),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3기, [[구덩이|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공동 주택 건립 및 근린 생활 시설 신축으로 2010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덕신리 572-6)가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기, [[고인돌|고인돌]] 1기, [[돌널무덤|돌널무덤]] 5기, [[움무덤|움무덤]] 1기, [[솟대유구|솟대 유구]] 3기, [[석열|석열(石烈)]] 5기, 구덩이 5기, [[구|도랑(溝)]] 8기 등을 확인하였고, 2011년 동서문물연구원(덕신리 572-8)이 집자리 4기, 고인돌 덮개돌(上石) 1기, 돌널무덤 6기, 도랑 2기를 조사하였다. 유적은 북쪽의 야산에서 남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구릉 사면(해발 16~30m)에 위치하며, 북쪽은 개발로 원지형이 유실된 상태이다. 유적은 같은 구릉에 위치한다. 덕신리 유적의 돌널무덤은 모두 깬돌(割石)을 세워서 벽을 축조하였다. 2-2호는 양쪽 짧은 벽과 긴 벽 일부에 벽석이 없어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일 가능성도 있다. 유물은 1·2호 돌널무덤에서 [[간돌검|간 돌검]]이 1점씩 출토되었다. 덕신리 572-6 유적 집자리는 [[기둥구멍|기둥 구멍]]의 배치와 규모에 따라 6주식(柱式)의 중형 집자리와 10주식의 대형 집자리로 구분된다. 대형 집자리 7·8호는 구릉의 정선부에 위치한다. 8호는 양쪽 끝에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각각 설치되어 있고, 남쪽 짧은 벽 쪽에는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와 다수의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7호는 집자리의 중심부를 따라 기둥 구멍 3개만 있고 남쪽에 토기 편과 유물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집자리 내의 공간 분할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조망권이 가장 좋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려온 구릉의 정선부를 따라 솟대 유구가 20m 간격으로 설치되었다. 이 솟대 유구를 경계로 동쪽에 돌널무덤이 위치하고 주변에는 구덩이와 도랑이 집중 분포한다. 고인돌은 울산을 비롯해 경북 북부와 동해안 지역에서 확인되는 [[위석식고인돌|돌 두름식 고인돌(圍石式支石墓)]]이다. 덮개돌 아래 하부 구조는 길이 0.3~0.4m의 평평한 깬돌이 한 벌 깔려 있을 뿐 별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고 받침돌도 없다. 고인돌의 북쪽에는 도랑이 돌려져 있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돌널무덤은 묘역 시설없이 모두 독립된 형태이다. 돌널무덤에는 시신을 그대로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5호 돌널무덤과 같이 소형은 [[화장묘|화장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돌널무덤에서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표지적인 유물인 [[마디자루간돌검|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돌살촉|돌살촉]]이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확인된 무덤과 출토된 간 돌검은 [[송국리문화권|송국리 문화권]]과 [[검단리문화권|검단리 문화권]]의 경계 또는 양 문화가 공존했던 점이 지대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 솟대 유구로 추정되는 시설과 용도 불명이지만 청동기 시대의 돌덧널형(石槨形) 석렬 유구, 무덤 주변에서 확인된 다수의 도랑 등은 당시의 [[의례활동|의례]]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덕신리 572-8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의 주 능선에서 확인되며, 대부분 삭평되어 상태가 불량하고 중복이 심하다. 유물은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살촉,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 토제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중 돌칼과 화살촉은 재가공 흔적이 관찰된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조사 지역 내 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1기가 위치하며, 덮개돌 하부에서 매장 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무덤의 기능보다 주변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묘표석|묘표석(墓表石)]]일 가능성이 있다. 돌널무덤은 열상으로 확인되었는데 주축 방향은 소형의 3호를 제외하고 모두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뚜껑돌(蓋石)은 4호에서만 확인되며, 벽석은 대부분 최하단석의 경우 판돌(板石)을 세워쌓기 하였다. 시상(屍床)은 1·2·5호에서는 비교적 평평한 판돌 여러 매를 깔아서 마련하였으며, 나머지는 시상석을 깔지 않고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덕신리 유적과 572-6 유적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6기의 돌널무덤에서는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시기는 세장방형, 장방형 집자리와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또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등 복합무늬가 시문된 점으로 볼 때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 형성되었으며, 이후 무덤 자료에서 출토된 간 돌검의 형식으로 볼 때 검단리 유형 단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시굴조사 || 2002년 08월 05일~2002년 10월 26일 || 울주 덕신리유적 || 2004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10년 02월 26일~2010년 03월 26일 || 울주 덕신리 572-6유적 || 2011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11년 02월 07일~2011년 02월 13일 || 울주 덕신리 572-8번지 근생시설 신축부지내 유적 || 2013 || 동서문물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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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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