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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덕리 복룡 고인돌군[靈光 大德里伏龍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덕리 복룡 고인돌군[靈光 大德里伏龍支石墓群] | 이칭별칭=영광 대덕리 복룡 고인돌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대덕리 277-1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대덕리 277-1 일원에 위치한다. 법성-영광 간 국도 확·포장 공사 구간에 편입되어 1998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고인돌]]은 복룡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북서쪽에 위치하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구릉 말단부에 해당한다. 원래 2기의 고인돌이 노출되어 있었지만 주변 지역에서 6기가 더 확인되었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구릉 능선 방향과 직교하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해발 4~6m의 아주 낮은 지점이어서 축조 당시는 바닷가에 가까운 지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 1호는 4개의 [[기둥모양|기둥 모양(柱形)]]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20톤에 이르는 덮개돌의 네 모서리를 받치고 있었다. 2호는 받침돌이 2매만 남아 있었지만 원래는 4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고인돌들은 이 일대가 논으로 개간되면서 파괴되어서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지만 1·2호 고인돌과 함께 구릉 능선에 열 지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덕리 고인돌군에서 주목되는 점은 함평·영광·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둥 모양 받침돌을 갖춘 고인돌의 존재이다. 1호 고인돌은 받침돌의 높이가 0.65~0.8m에 이르는데 받침돌은 각각 [[토광|움(土壙)]]을 파서 받침돌을 세운 다음 보강석을 채워 넣어 고정시켰다. 덮개돌 하부에서 [[묘광|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덮개돌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 범위에 돌을 깔아 놓았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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