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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대곡리 고인돌군[順天 大谷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대곡리 고인돌군[順天 大谷里支石墓群] | 이칭별칭=순천 대곡리 고인돌군, 대곡리 고인돌 나·다군, 대곡리 도롱 고인돌군·유적, 주암댐 수몰 지역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575(나군)·472-26(다군)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그물추]], [[자루 간 돌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경숙, 오세미 }}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575(나군)·472-26(다군) 일원에 위치한다. 대곡리 고인돌은 나군(도롱 고인돌군)과 다군(도롱 유적)으로 구분된다. 고인돌 나군은 남북으로 흐르는 보성강과 산맥 사이의 충적평야 지대에 강의 흐름과 같이 남북 2열로 분포한다. 바로 인접한 대곡리 577~587 일원에는 대규모 집자리 유적인 대곡리 유적이 위치하며 남쪽으로 400m 거리에 대곡리 고인돌 다군이 위치한다. 대곡리 고인돌 나군은 주암댐 수몰 지역에 포함되어 1986년 한국교원대학교가 발굴 조사하여 [[고인돌|고인돌]] 11기와 [[덮개돌|덮개돌(上石)]] 없는 [[묘광|무덤방(墓室)]] 4기를 확인하였다. 고인돌 11기 중 4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덤방이 있다.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6기가 동서이며, 1기는 남북으로 각각의 무덤방의 장축 방향이 덮개돌과 일치한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 또는 장방형이며, 길이 1.4~3.6m, 너비 0.9~2.7m, 두께 0.4~1.3m 정도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모두 [[받침돌|받침돌(支石)]]을 갖춘 [[바둑판식고인돌|바둑판식]]이며 무덤방 주변에는 무덤방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로 추정되는 강돌(川石) 및 깬돌(割石)이 군(群)을 이루고 있다. 무덤방의 평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의 [[돌덧널형|돌덧널형(石槨形)]]으로 판돌(板石)로 된 [[뚜껑돌|뚜껑돌(蓋石)]]이 있다. 단변은 1~2매의 판돌을 가로세우고 장축은 깬돌을 주로 이용하여 2~4단 정도 쌓았는데, 9-1호는 깬돌과 강돌을 이용하여 네 벽을 축조하였다. 바닥은 대부분이 3~4매의 판돌을 깔았으나, 7-1호는 잔자갈을 깔고 3-1호는 생토면을 이용하였다. 돌덧널은 길이 2.16m(2기), 1.8m(4기), 1.5m(3기), 1.2m(2기)로 구분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삼각돌칼|삼각 돌칼]] 그리고 [[손잡이|손잡이(把手)]] 및 [[그물추|그물추]] 등으로 수가 빈약하며 대부분이 무덤방 주변에서 수습되었다. 무덤방의 해체 과정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대곡리 고인돌 나군은 현 보성강 및 산맥의 방향인 남북 방향과 일치하는 것과 이와 반대인 동서 방향으로 배치된 것이 혼재하여 한 지역 내에서 서로 다른 배치 형태를 보인다. 대곡리 고인돌 다군은 1985년에 실시한 주암댐 수몰지구 지표 조사에서 ‘송광면 대곡리 지석묘 다군’으로 고인돌 21기가 보고된 바 있다. 2013년에 주암댐 건설로 수몰된 유적들에 대해 현지 조사를 실시하면서, 유적 일부가 갈수기에 노출되었다가 만수 시 다시 수몰되는 양상이 반복됨으로써 훼손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수자원의 원활한 확보 및 중요 유적에 대한 보전 방안 등 향후 대책을 마련하고자 발굴 조사하여, 청동기 시대 고인돌뿐 아니라 구석기 시대, 삼국 시대, 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동쪽은 보성강에 접해 있고, 나머지 삼면은 해발 100~250m의 구릉과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인돌군은 구릉 정상 사이에 형성된 해발 107m의 고갯마루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30기가 확인되었으며, 16호와 17호 고인돌 사이에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석렬 1기가 조사되었다. 1~25호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이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붕괴되었거나 균열이 심한 상태이다. 25기의 덮개돌 중 20기에서 하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또한 덮개돌이 없이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도 4기가 조사되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제형, 말각 방형, 방형, 장방형, 타원형, 마름모꼴으로 나누어진다. 제형 11기, 말각 방형 8기, 장방형 3기, 방형 1기, 타원형 1기, 마름모형 1기이다. 단면 형태는 장방형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방형, 말각 방형, 마름모꼴, 사다리꼴도 있다. 장방형 18기, 방형 3기, 말각 방형 2기, 마름모형 1기, 제형 1기이다. 덮개돌은 대부분 중·소형으로 크지 않다. 뚜껑돌(蓋石)은 덮개돌이 없이 조사된 26호와 30호에서 확인되었다. 30호는 뚜껑돌을 이중으로 덮었는데, 판돌(板石)과 깬돌(割石)을 사용하였다. 뚜껑돌은 [[묘광|무덤방(墓室)]]의 상면을 비교적 큰 판돌로 덮은 후 그 사이 빈 공간을 동일한 크기의 판돌이나 깬돌로 덮고, 다시 작은 깬돌을 이용하여 빈 공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보강하였다. 무덤방에 대한 조사는 덮개돌이 없이 확인된 4기에 대해서만 실시하였다. 무덤방의 형식은 돌덧널형(石槨形) 2기와 혼축형(混築形) 2기로 확인되었다. 28호는 깬돌을 이용해서 2단 정도로 쌓고 그 주변에 작은 깬돌을 끼워 넣어 마무리하였다. 30호는 강돌을 이용하여 3~4단 정도로 쌓은 뒤 벽석과 토광 사이에는 흙을 채워 넣었다. 혼축형은 판돌과 깬돌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짧은 벽은 판돌 1매를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긴 벽은 깬돌을 이용하여 2~3단 정도로 축조하였다. 바닥석을 살펴보면, 27호는 머리와 다리 부분에만 1매씩 판돌을 깔았고, 28호와 29호는 일정한 간격으로 판돌을 깔았다. 30호는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4점이 확인되었다. 23·27·28호에서 각각 1점씩 총 3점의 [[간돌살촉|간 돌살촉]]이 출토되었으며, 28호에서 [[간돌검|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1970~80년대에는 주암댐과 같은 대규모 댐 공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수몰 지역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하였거나 조사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었다. 대곡리 고인돌 다군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는 댐 공사로 수몰된 지역들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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