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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남송리 유적(浦項 南松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남송리 유적(浦項 南松里遺蹟) | 이칭별칭=포항 남송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562-1, 672, 827-2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도랑]], [[구덩이]], [[화덕 자리]], [[구멍무늬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반달 돌칼]], [[그물추]], [[돌대팻날]], [[숫돌]], [[가락바퀴]], [[역삼동 유형]], [[가락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562-1, 672, 827-2 일원에 위치한다. 영일만 신항 배후 도로 건설로 2008~2009년 조사하였으며, 남송리Ⅰ·남송리Ⅱ·남송리Ⅲ 유적에 해당한다. 유적은 천마산(해발 88.2m)의 서쪽 구릉 말단부에 능선을 달리하여 입지한다. 서쪽으로는 초곡천이 북류(北流)해 곡강천과 합류하여 동해로 흐르고, 초곡천의 서쪽 건너로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세 유적은 반경 2㎞ 내에 위치하는 동일한 성격의 유적이다. 남송리Ⅰ 유적(남송리 827-2)은 [[집자리|집자리]] 39기, [[구|도랑(溝)]] 32기, [[구덩이|구덩이]] 26기, [[화덕자리|화덕 자리]] 2기, [[기둥구멍|기둥 구멍]] 11개, [[기둥구멍군|기둥 구멍군(柱穴群)]] 1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 내 최정상부에 위치한 26호 집자리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2개, 서쪽으로 1개의 무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각 무리 내 집자리와 도랑은 서로 중복되어 있어 수차례에 걸쳐 단기간 사용된 마을로 판단된다. 집자리는 방형 7기, 장방형 9기이며, 23기는 사면이 유실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34호는 방형으로, 길이 3.68m, 너비 3.14m, 깊이 0.78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으로 북쪽에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ㅁ’자 모양으로 너비 0.25~0.32m, 깊이 0.06m이다. 기둥 구멍은 4주식(柱式)이며, 벽 도랑에 18개가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12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7.52m, 너비 3.84m, 깊이 0.28m이다. 집자리 내부 및 바닥 전면에서 목탄이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 중앙에 구덩식의 화덕 자리 1개가 설치되었다. 내부에는 목탄이 채워져 있었고 바닥면은 붉게 소결되었다. 벽 도랑은 ‘ㄱ’자 모양으로, 너비 0.10~0.26m, 깊이 0.06m이다. 기둥 구멍은 6주식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34호에서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반달돌칼|반달 돌칼]],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12호에서는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숫돌(砥石)]]이 출토되었다. 남송리Ⅱ 유적(남송리 672)은 구릉 말단부에 집자리 3기, 도랑 3기, 구덩이 8기가 서로 독립적으로 조성되었다. 모든 집자리는 한쪽 벽면이 유실되어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없다. 3호 집자리는 길이 4.12m, 너비 3.68m, 깊이 0.3m이며, 내부 벽체 함몰토 아래로 종·횡방향의 목탄이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ㄷ’자 모양으로, 너비 0.12~0.33m, 깊이 0.04m로 조성되었다. 기둥 구멍은 상면에서 2개가 부정형하게 확인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숫돌,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남송리Ⅲ 유적(남송리 562-1)에서는 집자리 2기, 도랑 2기, 구덩이 4기, 기둥 구멍 2기, 화덕 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유적의 동쪽과 서쪽에 분포하며, 1호 도랑이 폐기된 후 1·4호 구덩이가 순차적으로 축조되었다. 대부분 후대 경작과 지형 변형으로 훼손되어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 1호 집자리는 길이 4m, 너비 3.1m, 깊이 0.22m로 벽체 일부와 바닥만 남아 있다. 바닥 및 벽체 가장자리를 따라 탄화된 목재와 불탄 흙(燒土)이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의 남서벽에 치우쳐 길이 0.68m, 너비 0.65m, 깊이 0.05m의 부정형(不定形) 화덕 자리가 1개 확인되었다. 바닥면에서 구덩이 1개, 기둥 구멍 1개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2호는 길이 5.7m, 너비 4.74m, 깊이 0.31m이며, 동쪽과 남쪽의 긴 벽에서 목탄이 다량 확인되었다. 내부에는 구덩이 1개와 기둥 구멍 1개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반달 돌칼,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남송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유구가 확인되며, 중심 연대는 집자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유적은 초곡천 하류역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대규모 취락이며, 구멍무늬 토기를 주된 요소로 하는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의 토기 문화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문화를 주된 요소로 하는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의 토기 문화가 혼재되어 확인되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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