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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금야읍 유적(金野 金野邑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금야읍 유적(金野 金野邑遺蹟) | 이칭별칭=금야 금야읍 유적, 금야 영흥읍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용흥강 기슭 | 성격=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구덩식 화덕자리]], [[민무늬 토기]], [[삿자리]], [[검은 간 토기]], [[청동 거푸집]], [[비파형 창]], [[미송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용흥강 기슭에 위치한다. 1964년 9월에 조사되어 [[집자리|집자리]] 10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영흥역에서 동북으로 1㎞ 떨어진 곳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가의 밭 경작지로, 강물의 범람으로 유적이 파괴되면서 강기슭 단면에 집자리가 노출되어 알려졌다. 유적의 층위는 1m 두께의 모래층 아래에 0.15~0.2m 두께의 문화층이 있고 그 밑으로 흰모래가 쌓인 원토층이 있다.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이며 깊이는 0.2~0.3m 정도로 깊지 않다. 집자리들은 겹 놓인 상태와 층위 관계에 따라 약간의 시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불탄 집자리에서는 서까래로 썼던 통나무와 벽체(壁體)를 만들었던 널판지 흔적이 나왔으나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는다. 9호 집자리는 길이 11m, 너비 0.6m, 깊이 0.35m이며, 내부 바닥에는 숯, 재와 함께 회색 진흙이 군데군데 깔려 있어 지붕에 진흙을 얹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0호는 길이 10m, 너비 7m, 깊이 0.3m로 내부에는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 2기가 있으며, 바닥에 깔았던 [[삿자리|삿자리]]가 불탄 채 남아 있다. 6호와 8호는 면적이 5~9㎡의 소형으로 창고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물은 갈색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구멍무늬(孔列文)에 젖꼭지 손잡이(乳狀把手)가 달린 것, [[짧은빗금무늬토기|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臺附土器)]] 등이 있다. 한편 지표 조사에서 [[청동거푸집|청동 거푸집]]이 3점 나왔는데, [[청동주머니도끼청동거푸집|청동 주머니도끼]], [[비파형창끝부분청동거푸집|비파형 창(琵琶形棠) 끝부분(鋒部)]], [[청동방울청동거푸집|청동 방울]]을 부어낸 [[거푸집|거푸집]]들이다. 1호 집자리에서는 흑연 덩어리가 나와 [[청동기|청동기]] 제작과 관련되는 유물로 생각된다. 집자리 내 유물 갖춤새는 [[북청중리유적|북청 중리]], [[북청토성리집자리|토성리 집자리]] 등 함경남도 동해안 지방의 유적들과 공통의 특징을 보이며 토기류는 [[강계공귀동유적|강계 공귀동]], [[의주미송리유적|의주 미송리 유적]]의 것들과 닮은 것도 있다. 또한 청동 비파형 창 끝, [[미송리식토기|미송리식 토기]] 등은 서북 지방의 문화 요소로서 동해안 지역에서는 처음 조사된 것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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