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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구어리·입실리 유적(慶州 九於里·入室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구어리·입실리 유적(慶州 九於里·入室里遺蹟) | 이칭별칭=경주 구어리·입실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228-4, 317-6, 입실리 산43-1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둘레 도랑]], [[도랑]], [[고인돌]], [[화덕 자리]], [[알 구멍]], [[구멍무늬 토기]], [[가로줄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간 돌검]], [[간 돌살촉]], [[간돌도끼]], [[반달 돌칼]], [[흔암리식 토기]], [[검단리식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228-4, 317-6, 입실리 산43-1에 위치한다. 울산-포항 복선 전철 구간에 포함되어 2013~2015년 조사하여, 2·4·6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30기, [[구덩이|구덩이]] 3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3기, [[구|도랑(溝)]] 1기, [[고인돌|고인돌]] 1기 및 [[통일신라|통일 신라 시대]], [[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동쪽 산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의 비탈면(傾斜面)과 구어들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1㎞ 떨어져 구어리 산 65-4 유적이 있다. 집자리는 2구역 6기, 4구역 22기, 6구역 2기가 확인되었다. 2구역은 2개의 무리로 열을 이루고 있고, 4 구역은 2~3기가 중복 조성되었다. 6구역은 비탈면에서 확인되었다. 형태는 방형 또는 긴사각형이다. 길이는 대부분 2.5~6.4m이며, 4구역 6호는 길이 9.16m, 너비 4.6m로 가장 크다. 집자리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집자리 밖으로 이어지는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있다. 화덕 자리는 땅을 파지 않은 [[평지식화덕자리|평지식(平地式)]]과 땅을 조금 파서 만든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 있다. 대부분 중앙에서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1개를 설치하였으며, 2구역 6호는 2개를 설치하였다. 기둥 구멍은 [[주기둥구멍|주 기둥 구멍(主柱穴)]]의 배치에 따라 4주식과 6주식, 8주식으로 구분된다. 벽 도랑은 ‘ㅡ’, ‘ㄱ’, ‘ㅁ’자 모양으로 벽을 따라 돌렸는데, 한쪽 모서리에서 배수 기능을 하는 외부 돌출구와 연결된다. 4구역 9호에서는 집자리를 ‘ㄷ’자 모양으로 감싸는 둘레 도랑이 확인되었다. 둘레 도랑의 너비는 0.32~0.44m이고 집자리 북동쪽 벽에서 2m 떨어진 지점에 설치하였다. 4구역 13호는 짧은 벽 쪽에 벽 도랑을 이중으로 설치하였다. 둘레 도랑은 4구역에서 확인되었는데, 평면 모양은 말각 방형이고 길이 10m 내외의 크기이다. 둘레 도랑은 성격은 분명하지 않지만, 4구역 9호 집자리를 감싸고 있는 둘레 도랑을 통해 집자리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한다. 2구역 집자리에서는 폐기 이후에 돌을 쌓은 사례가 다수 확인되는데, 화덕 자리 위에 타원형 모양의 [[돌무지|돌무지(積石)]]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대부분 화재로 폐기되었다. 고인돌은 2구역에서 확인되었다. [[덮개돌|덮개돌(上石)]]과 [[받침돌|받침돌(支石)]]은 원래 위치에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길이 3.34m, 두께 1.06m, 무게 약 26톤이다. 덮개돌은 원형에 가깝고 윗면에는 지름 5㎝ 내외 크기의 [[알구멍|알 구멍(性穴)]] 4개가 확인되었다. 서쪽 옆면에서는 돌을 캐는 과정에서 생긴 홈이 여래 개 확인된다. 아랫면은 요철(凹凸)이 많아 표면이 거칠다. 받침돌은 원래 4개 이상으로,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배치하여 덮개돌을 받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 받침돌은 원래 자리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북쪽 받침돌은 부정형이며, 길이 1.6m, 너비 1.1m, 두께 0.9m이다. 받침돌 아래에는 지름 0.2m 내외 크기의 깬돌을 놓았다. 덮개돌 아래의 받침돌 안쪽 부분에는 길이 40㎝의 [[깬돌|깬돌(割石)]]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매장(埋葬) 시설을 깬돌로 만들었다고 추정하는데, 구체적인 구조는 알 수 없다.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가로줄무늬토기|가로줄무늬 토기(橫線文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도끼|간 돌도끼]], [[반달돌칼|반달 돌칼]] 등의 석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연대는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 단계부터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한다. 유적은 동천 주변 구릉에 살았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규모는 작지만 조성 기간이 오랜 기간 이어져 청동기 시대 마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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