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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구서리 고인돌군[平壤 九瑞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구서리 고인돌군[平壤 九瑞里支石墓群] | 이칭별칭=평양 구서리 고인돌군, 평양 구서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양직할시 순안구역 구서리의 무학산 동쪽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묵방형 고인돌]], [[간 돌살촉]], [[청동 살촉]], [[대롱옥]]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구서리의 무학산 동쪽에 위치한다. 산의 봉우리와 능선 및 경사면에 분포하는 [[고인돌|고인돌]] 16기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모두 [[묵방형고인돌|묵방형 고인돌]]에 해당한다. 1호 고인돌은 뚜껑돌(蓋石)이 장방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며, 무덤방은 벽체의 모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상태였다. 2호는 부정형의 뚜껑돌이 무덤방에서 남쪽으로 밀려나 있었고, 바닥에는 작은 돌들을 한 번 깔고 그 위에 작은 판돌(板石)들이 깔렸다. 3호는 뚜껑돌이 부정형이며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4호의 무덤방은 길이 1.6m, 너비 0.9m, 높이 0.4m이다. 5호는 장방형의 뚜껑돌 서쪽 가장자리 밑에서 무덤방이 드러났으며 바닥에는 얇은 판돌이 한 벌 깔렸다. 6호는 타원형의 뚜껑돌 아래에서 깬돌(割石)으로 쌓은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7호는 뚜껑돌이 1/3 정도 깨진 상태였다. 8호는 뚜껑돌 밑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0.2~0.5m 떨어져 판돌으로 쌓은 벽면이, 9호는 덮개돌 밑에서 동남쪽 벽과 서북쪽 벽이 확인되었다. 10호는 무학산 첫째 봉우리와 둘째 봉우리 사이의 능선부에 위치한다. 11호와 12호는 뚜껑돌이 이미 없어진 상태였으며, 13호와 14호는 타원형의 뚜껑돌이 확인되었다. 15호는 장방형의 뚜껑돌이 무덤방을 완전히 벗어나 서쪽 경사면에 기울어져 있었다. 16호는 뚜껑돌이 없는 상태이며 무덤방은 네 벽 모두 큰 돌을 4~5단 쌓아 만들었다. 8호에서 조롱박의 윗부분을 잘라낸 듯한 모양의 [[토기|토기]]가, 11호에서 삼릉촉(三稜鏃)으로 분류될 수 있는 [[청동살촉|청동 살촉(銅鏃)]]이 출토되었다. 출토 수량이 가장 많은 [[간돌살촉|간 돌살촉]]은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모두 있다. 그 외에 [[돌도끼|돌도끼(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갈돌|갈돌(碾石)]], [[숫돌|숫돌(砥石)]], [[돌창|돌창(石槍)]],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2002년에 발굴 조사된 9기의 고인돌이 마치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점에서 천문 관측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확증하기 어렵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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