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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구산리 유적(順天 九山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구산리 유적(順天 九山里遺蹟) | 이칭별칭=순천 구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귀산마을 550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가지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적갈색 연질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한옥민 }}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귀산마을 550 일원에 위치한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변에 형성된 반월형의 충적 평지에 위치한다. 구산리 일대의 충적지에는 [[청동기시대|청동기]]~[[철기시대|철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외에도 [[고인돌|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1979년 태풍으로 인한 홍수로 인해 충적 평지의 일부가 깎여 나가 단면이 노출되면서 바닥과 벽선 일부가 드러났다. 이곳은 사질토층(沙質土層)을 이루고 있다. 집자리 바닥은 현 지표면으로부터 0.8m 아래에서 흔적이 확인되었다. 벽선은 0.4m 정도 불탄 흔적과 함께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었으나 뚜렷하지는 않다. 유물은 집자리 단면에 박혀진 상태로 수습되었는데 모두 토기류로, 대부분 [[적갈색연질토기|적갈색 연질 토기(赤葛色軟質土器)]]이고 [[회청색경질토기|회청색 경질 토기(灰靑色硬質土器)]] 1점이 있다. 한편, 집자리 바닥의 0.2~0.3m 바로 아래에서 또 다른 집자리가 파괴된 상태로 확인되었는데, 여기에서 직립 구연(直立口緣)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이 밖의 지표 채집 유물은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류, 석기류, 철기 시대 토기류 등이 수습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물은 [[가지무늬토기|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 등의 토기류와 [[간돌검|간 돌검]], [[반달돌칼|반달 돌칼]], [[간돌살촉|간 돌살촉]],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가락바퀴|가락바퀴]], [[그물추|그물추]] 등 석기류와 흙제품이 있다. 구산리 유적은 전남과 경남 지역을 잇는 문화적 점이 지대이며, 청동기-철기-삼국 시대까지 연속되는 유물이 확인된 점이 주목된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가 중심 연대인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가 출토되어 유적의 상한 연대를 반영하며, 경남 서부에서 발견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양 지역 간 문화 교류를 시사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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