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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괴정동 유적(釜山 槐亭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괴정동 유적(釜山 槐亭洞遺蹟) | 이칭별칭=부산 괴정동 유적, 부산 괴정 2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358-1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간 돌검]], [[간 돌살촉]], [[고인돌]], [[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동주 }} ==설명==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358-1에 위치한다. 1964년 천마산 기슭의 굴착 공사 과정에서 [[돌덧널|돌덧널(石槨)]] 형태를 지닌 유구가 신고되어 알려졌다. 남아 있는 유구는 약 20㎝의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길이 1.8m, 깊이 0.8m의 장방형의 돌덧널로, 바닥에는 판돌(板石)을 깔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구 주변으로 [[뚜껑돌|뚜껑돌(蓋石)]]으로 생각되는 길이 1.6m, 너비 0.5m, 두께 0.2m의 판돌 1매가 확인되었다. 판돌 주위로 15~20㎝ 크기의 작은 깬돌들도 일부 확인되어 뚜껑돌 사이의 틈을 메웠던 채움 돌로 판단된다. 그러나 주변에서 [[고인돌|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이 발견되지 않아서 고인돌의 하부 구조인지, 아니면 단순히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유구 내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1점, [[간돌검|간 돌검]] 1점, [[간돌살촉|간 돌살촉]] 5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붉은 간 토기는 높이 33.1㎝, 입지름 10㎝로 일반적인 고인돌 출토 소형의 독 모양 붉은 간 토기와는 달리 비교적 크고 바닥이 편평하다는 점에서 제천 황석리 C호 출토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및 인근의 괴정1동 출토 민무늬 토기와 유사하다. 간 돌검은 자루 것(有柄式)으로, 칼날 길이 14.1㎝, 손잡이 길이 11.1㎝, 검코(麵部)의 너비 22.6㎝, 손잡이 하단부(柄頭部) 복원 너비 25.2㎝이다. 손잡이 검코 부분과 하단의 형태가 과장되어 있어 매우 비실용적이다. 시기는 간 돌검 중에서는 가장 후기에 속하며, [[김해무계리고인돌|김해 무계리 고인돌]] 출토품과 매우 유사하다. 간 돌살촉 중 2점은 미완성품이며, 3점은 완성된 버들잎 모양 슴베식(柳葉有莖式)이다. 유적과 인접한 괴정 1동에서도 유사한 기형의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고, 괴정동 892-1 유적에는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의 [[조개더미|조개더미(貝塚)]] 유적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이 일대를 배경으로 하는 집단들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부터 원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영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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