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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곽지리 유적(濟州 郭支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곽지리 유적(濟州 郭支里遺蹟) | 이칭별칭=제주 곽지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808-5·2032 일원 | 성격=패총 | 키워드=[[패총]],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돌끌]], [[갈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경민 }}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곽지패총.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808-5·2032 일원에 위치한다. 1973년 곽지리 2032 일원에서 조개더미 유적이 처음 확인된 이후, 1979·1984·1985·1989·1992년에 걸쳐 조사되었으며 이후 1808-5, 2249 일원에서 생활 유적이 추가로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안에서 1㎞ 떨어져 있으며 해발 15~3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상에 넓게 분포한다. 유적이 형성된 서쪽으로는 금성천이 해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 이후까지 오랫동안 지속된 유적으로, 역삼동 단계의 유물이 확인되지만 동 시기 유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해 구체적인 성격을 알 수 없다. 다만 생활 유적에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가 다수 조사되었는데 벽체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3~5단 정도 돌담을 쌓아 보강한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제주 서남부의 예래동과 [[화순리유적|화순리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를 비롯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주류이다. 석기는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돌끌(石鑿)]], [[숫돌|숫돌(砥石)]], [[갈돌|갈돌(碾石)]]이 출토되었다. 절대 연대 분석 결과, 2600~1960 BP가 산출되는 점을 볼 때,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유적이 형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곽지리 유적은 [[역삼동문화|역삼동 문화]] 단계에 유적이 형성된 이후, 역삼동 문화가 잔존하면서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의 유입으로 마을의 규모가 점차 확대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정정보== {|class="listtable"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국가유산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곽지패총 (郭支貝塚)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900410000 🔗]</span>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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