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800-0231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800-0231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한반도 서북 지역의 신석기 마을[韓半島西北地域의 新石器聚落]}}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한반도 서북 지역의 신석기 마을[韓半島西北地域의 新石器聚落] | 이칭별칭=한반도 서북 지역의 신석기 취락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한반도 서북 지역 | 관련 유적=허우와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마을]], [[한반도 서북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서북 지역의 신석기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구자진 }} ==설명== 한반도의 서북 지역은 청천강 유역부터 압록강 유역까지를 중심으로 하며, 중국 타이쯔허(台子河) 유역에 이르는 지역이다. 행정구역상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 중국의 단둥(丹東), 번시(本溪)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압록강의 중류와 상류에는 강과 평행하게 강남산맥, 적유령산맥 등의 험준한 산악 지대가 있으므로, 대부분의 선사 시대 유적은 압록강 하류의 해안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동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편평한바닥토기|편평한 바닥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초기에는 랴오허(遼河) 유역의 [[지자무늬|‘지(之)’자무늬]] 토기 문화와 관련이 있다. 서북 지역의 신석기 시대 마을 유적으로는 [[용천신암리유적|용천 신암리 유적]]·[[용천용연리유적|용연리 유적]], [[염주반궁리유적|염주 반궁리 유적]], [[영변세죽리유적|영변 세죽리 유적]] 등이 있다. 서북 지역은 유적 수에 비해 [[집자리|집자리]]가 많지는 않다. [[허우와유적|허우와(後窪)]], [[다강유적|다강(大崗)]], [[스푸산유적|스푸산(石佛山) 유적]] 등이 있는 압록강 이북의 랴오닝(遼寧) 지역과 같은 문화 권역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랴오닝 지역을 바탕으로 한반도 서북 지역의 집자리와 마을의 구조,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랴오닝 지역의 유적은 대체로 나지막한 구릉이나 강변 충적지에 있으며, 대규모 마을이나 소규모 마을의 형태였으리라고 추정된다. 염주 반궁리 유적과 [[정주당산유적|정주 당산 유적]]에서는 [[조개더미|조개더미]]가 확인되었는데, 특히 반궁리 유적에서는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되어 조개더미가 마을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기에 해당하는 마을 유적은 허우와(하층) 유적과 다강 유적이다. 허우와(하층)은 집자리 12기 중 2기만 구체적으로 보고되었으며, 다강 유적은 집자리가 1기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중기의 집자리도 영변 세죽리 유적과 허우와(상층) 유적에서만 조사되어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압록강 유역의 집자리는 구조와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비교적 많이 조사되었는데, 집자리의 평면은 대개 장방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4∼8m 내외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내부 시설 중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스푸산 유적에서는 돌두름식[圍石式], 용연리 유적과 반궁리 유적, 허우와(상층) 유적에서는 구덩식[竪穴式]만 확인된다. 이는 한반도 동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 지역 내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각 유적을 형성한 결과로 추정할 수 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지름 60cm 내외인 소형과 지름 100cm 이상인 대형이 존재한다. 기둥 구멍은 허우와(상층) 유적의 F10·F40호 집자리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정형성이 확인된다. 이러한 배치는 동북 지역의 [[무산범의구석유적|무산 범의구석 유적]]과 동일한 양상으로 동북 지역과 서북 지역 집자리 간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출입구 시설은 허우와 유적과 스푸산 유적에서만 확인되었는데, 허우와(하층) 유적에서는 돌출된 형태의 경사진 구조, 허우와(상층) 유적과 스푸산 유적에서는 돌출된 형태의 계단식 구조를 띤다. 이 밖에도 바닥은 시기와 관계없이 점토 다짐을 하였으며, 후기의 집자리 중에는 점토 다짐 후 불 처리한 사례도 확인된다. 집자리의 바닥 처리 방식은 주변 환경과 입지에 따라 달리하였다. 한반도 서북 지역 마을은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입지 조건과 생업 환경에 따라 해안과 내륙에서 대규모 마을이나 소규모 마을, 야영지 등의 형태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생업|생업]] 형태는 [[어로활동|어로]]와 [[수렵활동|수렵]], [[채집활동|채집]]을 기반으로 하고 [[농경|농경]]은 병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북 지역 마을은 서해안을 따라 중서부 지역이나 중국의 랴오둥(遼東) 지방과 교류하고, 내륙으로는 동북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구자진, 배성혁. (2009). <i>한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i>. 예맥. * 구자진. (2010). <i>한국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마을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숭실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2885018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i>압록강류역일대의 신석기시대유적</i>. 진인진. https://www.riss.kr/link?id=M1163457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800-0231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