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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자비용 토기(煮沸用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자비용 토기(煮沸用土器) | 이칭별칭=취사용 토기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한반도 전 지역 | 관련 유적=창녕 비봉리 유적 | 키워드=[[바리 토기]], [[의례용 토기]], [[저장용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양성혁 }} ==설명== 자비용 토기는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한 토기를 일컫는다. 대체로 아가리 지름이 25~35cm 내외인 중형 [[바리토기|바리 토기]]이다. 자비용 토기는 육안 관찰이나 내용물 분석으로 구분한다. 토기 겉면에 불과 접촉한 흔적이나 그을음이 남아 있는 토기는 조리 용기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토기 안팎에 붙어 있는 탄화물을 분석하였을 때, 열 변형으로 형성되는 물질[alpha-Phenylacetoacetamide, APAA]이 확인되어도 조리 용기로 볼 수 있다. 실례로 [[울산세죽유적|세죽 유적]], [[창녕비봉리유적|창녕 비봉리 유적]] 등지에서 출토된 토기에는 음식을 조리할 때 끓어 넘치며 생긴 탄화물 자국이 안팎으로 부착되어 있으며, 일부 토기는 내부에 도토리가 원래 형태 그대로 탄화되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바리 토기는 끊이거나 찌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이다.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의 음식 조리는 불 위에 음식을 그냥 얹어 두는 방식이었다. 열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면서 열에 노출되며 발생하는 손상을 최소화하려면 각진 부분을 최소화한 길쭉한 형태의 바리 토기가 가장 적합하다. 토기를 음식의 조리에 이용하면서 이전에는 날로 먹거나 불에 구워야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을 삶거나 쪄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날로 먹으면 질기거나 인체에 유해해 먹기 어려웠던 식물 자원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토기를 신석기 시대의 지표로 보고 토기의 출현 시점을 신석기 시대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울진_죽변리_유적_출토_자비용_토기.jpg File:창녕_비봉리_유적_출토_탄화물_흔적_있는_토기_조각.jpg </gallery>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2015). <i>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i>. https://www.riss.kr/link?id=M13922460 * 김장석. (2005). 한국 선사시대 식량가공과 조리. 복천박물관(편저), <i>선사·고대인의 생업경제: 제9회 학술발표회 자료집</i>. 복천박물관. * 동삼동패총전시관. (2004). <i>신석기시대의 토기문화</i>. https://www.riss.kr/link?id=M978739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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