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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두벌묻기[洗骨葬]}}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두벌묻기[洗骨葬] | 이칭별칭=세골장, 이차장, 복장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한반도 중동부 지역 | 관련 유적=울진 후포리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무덤]], [[껴묻거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황철주 }} ==설명==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방식은 크게 사망 후 [[주검|주검]]을 그대로 [[무덤|무덤]]에 안치하는 1차장과 주검을 임시로 묻거나 야외에 두어 살이 썩어 없어지게 만든 후 뼈만 추려서 다시 매장하는 2차장으로 구분된다. [[두벌묻기|두벌묻기]]는 2차장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울진후포리유적|울진 후포리 유적]]이 있다. 울진 후포리 유적은 1개의 거대한 구덩이 안에 최소 40여 구의 주검이 매장된 집단 무덤이다. 주검은 모두 뼈만 추려서 매장하였으며, 아래에서 위로 뼈를 순차적으로 포개어 올렸다. 주검의 머리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매장 풍습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으로 해석된다. 주검 위에는 [[껴묻거리|껴묻거리]] 또는 장의 예식(葬儀禮式)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된 180여 점의 장대형 [[간돌도끼|간 돌도끼]]를 덮었으며, 옥으로 만든 장신구 등을 함께 묻었다. 이러한 매장 방식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유적 중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만 나타난다. 울진 후포리 유적의 두벌묻기는 [[신석기시대조기|신석기 시대 조기]](기원전 5,000년 전후) 한반도 중동부 지역에서 살았던 집단의 독특한 매장 풍습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하인수. (2021). 신석기시대 분묘와 부장품. 복천박물관(편저), <i>제14기 고고학 시민강좌 자료집</i>. * 황철주. (2022). 동해에 인접한 극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매장 관습과 사회상. <i>한국신석기연구, 43</i>, 1-34. https://www.riss.kr/link?id=A10819707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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