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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흑요석(黑曜石)}}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흑요석(黑曜石) | 이칭별칭=흑요암 | 시대=구석기 시대 | 관련 유적=포천 중리 용수재울 유적 | 키워드=[[화성암]], [[유리질 화산암]], [[좀돌날]], [[밀개]], [[새기개]]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3 | 집필자=장용준 }} ==설명== 흑요석은 로마 시대 ‘플리니우스의 자연 역사(Pliny’s Natural History)’에서 유리질 화산암을 옵시디아누스(Obsidianus)라고 기재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고고학계에서는 보편적으로 흑요암보다는 흑요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흑요석은 화산 지대에서 이산화규소(SiO2)의 함량이 높은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생성되는 유리질 암석으로, 모스 경도(Moh's hardness)가 5 정도인 검게 빛나는 광물이다. 입자가 매우 곱고 균일하며 돌을 깨면 날카로운 날이 생겨, 구석기인이 석기 제작에 즐겨 사용했다. 흑요석은 검은색 이외에도 다양한 색을 띤다. [[양구상무룡리유적|양구 상무룡리 유적]]과 [[철원장흥리유적|철원 장흥리 유적]]에서는 갈색 바탕색에 검은 반점이 있는 적갈색 흑요석이 출토되었다. 남부 지역에서는 갈색 흑요석이 발견된 바가 없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만 산출되는 하나토카치(花十勝石)는 갈색, 적갈색, 홍색을 띠는 바탕에 검은 반점이 있는 매우 독특한 흑요석이다. [[남양주호평동유적|남양주 호평동 유적]]에서 발견된 검은색 계열의 흑요석에는 회색 줄무늬나 회색, 반투명한 갈록색 등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흑요석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70만 년 전의 케냐의 [[칼리안두시유적|칼리안두시(Kariandusi)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만 년 전부터 [[좀돌날|좀돌날]], [[밀개|밀개]], [[새기개|새기개]] 등의 석기 제작에 흑요석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흑요석제석기|흑요석제 석기]]는 1935년 동관진 연대봉에서 뼈 화석을 조사하며 털코뿔이 등의 뼈와 함께 발견한 석기 2점이다. 이것은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알려졌지만, 관련 보고서만으로는 이를 분명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로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흑요석이 출토되는데, 흑요석은 화학 조성 성분이 모두 달라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다. 일본에는 흑요석 산지가 60개가 넘는다. 러시아에는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흑요석 산지가 분포한다. 중국은 동북 3성 중 백두산과 접한 지린성(吉林省) 남부 지역에서 흑요석이 대규모로 출토된다. 한반도 내륙과 일부 유적을 제외하면 구석기 시대에는 모두 백두산 흑요석을 사용했다. 백두산 흑요석은 모두 3종류(PNK1~3)로 보고되었으나, 장용준의 연구에서 PNK4도 새롭게 발견되었다(장용준 외, 2016). 우리나라에서는 40여 곳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흑요석이 출토되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흑요석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백두산 흑요석을 유통하는 핵심 교통로가 추가령 구조곡이었기 때문이다. 추가령 구조곡 주변의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의 철원 장흥리, 포천 늘거리, 포천 용수재울, 연천 통현리, 연천 삼거리, 의정부 민락동과 신곡동, 남양주 호평동, 광주 삼리, 의왕 포일동, 양구 상무룡리, 인제 부평리, 홍천 하화계리 등에서 흑요석제 석기가 출토되었다. [[대구월성동유적|대구 월성동 유적]]의 흑요석은 원산지 분석 결과 모두 백두산 기원으로 밝혀졌다. 환동해안 지역에서 흑요석은 이동 거리가 400km를 넘지 않았지만, 백두산 흑요석은 최대 800km 떨어진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에서는 흑요석 원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 10cm 이하의 작은 석기나 부스러기뿐이다. 후기 구석기 유적 중에서 장흥 신북 유적, 울산 신화리 유적, 사천 이금동 유적에서 일본 규슈(九州)산 흑요석이 확인되었다.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제 석기들은 모두 일본 규슈산 흑요석으로 만들었다.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사에서 일본 지역에서 최초로 건너온 물품은 흑요석이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File:대구_월성동_유적_출토_백두산_흑요석으로_만든_석기_일괄.jpg File:포천_중리_용수재울_유적_출토_흑요석_좀돌날_몸돌.jpg </gallery> ==참고문헌== * 국립대구박물관. (2016). <i>대구 월성동유적 흑요석 원산지 및 쓴자국 분석</i>. https://www.riss.kr/link?id=M14373695 * 장용준. (2013). 한국 구석기시대 흑요석 연구의 현황과 과제. <i>한국구석기학보, 28</i>, 19-60. https://www.riss.kr/link?id=A102716177 * 장용준. (2021). 후기구석기시대의 광역네트워크 구조: 흑요석을 중심으로. <i>호서고고학, 50</i>, 46-77. https://www.riss.kr/link?id=A107888791 * 大谷 薰. (2009). 韓半島における先史時代の黒耀石利用. <i>駿台史學, 135</i>, 117-146. https://ndlsearch.ndl.go.jp/books/R000000004-I1022957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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