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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간접떼기[間接打法]}}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간접떼기[間接打法] | 이칭별칭=간접타법, 대고 떼기 | 시대=구석기 시대 | 관련 유적=진안 진그늘 유적 | 키워드=[[석기]], [[직접떼기]], [[돌날떼기]], [[공주 석장리 유적]], [[돌날몸돌]]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3 | 집필자=김은정 }} ==설명== [[석기|석기]]를 제작하는 기법의 하나다. 석기에 뿔, 나무, 뼈, 금속 등으로 정(punch)을 대고 망치로 때려 간접적으로 떼는 방법이다. 대고 떼기라고도 부른다. 이 기법은 내리치면서 전달되는 힘을 대단히 좁은 지점에 모아 힘을 일정한 방향으로 가하고 그 강도를 높임으로써 효율을 올리는 것이다. 또한 [[직접떼기|직접떼기]]보다 때릴 지점의 위치를 정확하게 잡을 수 있다. 특히 규격이 좁고 긴 [[돌날떼기|돌날떼기]]는 간접떼기 기법으로 이루어졌다고 일컬어졌다. 이는 1960년대 말 보르드(Bordes, F.)의 돌날떼기 실험 결과를 따른 것으로, 당시는 물론 1970~80년대까지 연구자 대부분이 여기에 동조하였다. 반면 유물 중에 정이 출토된 사례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의 간접떼기 기법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표명되기도 하였다. 그 후 90년대 들어 페르그랑(Pélegrin, J.) 등 새로운 연구자에 의해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시대]]의 돌날떼기는 무른 망치로 직접떼기한 것임이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주석장리유적|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출토된 [[돌날몸돌|돌날몸돌]]의 제작 기법을 언급하면서 이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참고문헌== * 배기동. (1997). 구석기문화. 국사편찬위원회(편저), <i>한국사</i>. 2, <i>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i>(pp. 13-304). https://www.riss.kr/link?id=M2761892 * 서인선. (2015). 석장리유적 돌날과 좀돌날 제작의 기술학적 재검토 -돌감, 제작방법과 떼기기술을 중심으로-. <i>한국구석기학보, 31</i>, 54-83. https://www.riss.kr/link?id=A102716183 * 한창균. (1994). 구석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한길사 한국사편집위원회(편저), <i>한국사</i>. 1, <i>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1</i>. 한길사. https://www.riss.kr/link?id=M9398034 * Inizan, M.-L. (1999). <i>Technology and Terminology of Knapped Stone</i>(J. Feblot-Augustins, Trans.). CREP.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31349739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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